적색1호 립스틱을 입술에 문지른다죽은 듯 엎드려 있던 지렁이가 깨어난다입술의 주름이 꿈틀꿈틀 기어가는 사이에 여자의 욕망이 있다여자가 여자에게서 또 그 여자의 여자에게서 전염된 붉은 욕망은 봄날의 꽃처럼 증식하였다붉은 꽃잎 한 점이 입술에 날아 붙어

전숙   2014-09-26

사랑을 사탕으로 생각하며 빨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시인이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이란 산문집을 냈는데 사랑은 이처럼 감미롭고 짜릿하다. 입안에 넣어 혀로 굴리면서 단맛을 빨아먹을 만큼 사랑은 신나고 달콤하고 행복하다. 솜사탕이든 콩

김종   2014-09-26

그리던 두 강이 간절한 마음을 포개면두물머리에 스치던 바람마저 뜨거운 꽃숨을 터뜨리던, 꽃잎마다 올올이 갈기가 서던마디마디 번개 치는 계절은 어느덧 자식처럼 떠났습니다풀꽃도 고개 돌린 어느 한적한 날에매듭 매듭 옹이 백인 거칠고 미운 손을 무연히 잡으

전숙   2014-09-12

태양 아래 사람을 생각한다. 사람 아니고도 태양 없는 생존이 가능할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태양은 빛나면서 살아있는 것들을 향한 에너지를 끊임없이 주사한다. 어느 날 태양이 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치자. 어찌 밤낮이 있고 양지 음지가 있겠는

김종   2014-09-12

정말?따라만 가면 쉬운 길 기찻길이거나 버스길이거나 엄마 할머니 길이거나아빠 할아버지 길이거나 선생님 길이거나 아니면 스타의 길?것도 아니면 정치가 학자의 길?것도 아니면 봉사의 길것도 아니면 재벌의 길것도 아니면공갈 사기 협박 폭력 도박 매춘의 길?

전숙   2014-08-29

얼마 전 신문 지상에서 눈여겨지는 기사 하나가 실려 있었다. 非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바로 ‘어머니’(mother)라는 것. 영국이 자기나라 문화홍보를 위해 영국문화협회가 창설 70주년을 맞아 1만개 비영어권극가에서

김종   2014-08-29

칼이 된 그리움이 있다고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리에 풍장을 하고어미의 앞에서 새끼낙타를 칼로 찔러 죽인다어미는 새끼의 냄새를 일 년도 넘게 기억할 수 있어서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꾸는 고비에서풍장한 곳을 찾기 위해 어미낙타를 데려가려는 것이

전숙   2014-08-22

빛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았는가. 빛이 없는 세상을 생각이나 할 수 있는가. 빛이 있음으로 해서 어둠 또한 생각할 수 있다. 빛만 있고 어둠 없는 세상은 어떤가. 빛이 절대로 필요하듯 어둠 또한 절대로 필요하다. 빛과 어둠은 그 어느 것도 생물들의

김종   2014-08-22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수백 명 중에 남은 사람 몇몇이니그만 되었다고 한다할 만큼 했다고 한다자식 팔아서 무슨 영화를 누리려느냐고 악플을 단다그러나 부모의 바람은 한가지다사랑하는 자식, 내 손으로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을 뿐이다오 분 후에 수장될 줄 모

전숙   2014-08-15

주말에 운주사를 다녀왔다. 입구에서부터 눈짓을 보내는 석탑이며 석불들을 만나면서 새삼 행복해진다. 어느 때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저 많은 부처와 탑신을 다듬고 쌓았을까. 궁금증은 산처럼 커지건만 불가사의는 여전하다. 운주사는 필자에게 초등학교 시절에

김종   2014-08-15

아들아, 아침을 차리다가 네 소식을 들었다숟가락을 놓다가 말고 하염없다가다시 숟가락을 든다네가 개처럼 핥아먹었다는 누군가의 가래침처럼끈적끈적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오개월을 그렇게 살았구나폭력과 인신공격과 해코지를 당하면서아들아 이를 악물고 견디었

전숙   2014-08-01

창 밖 세상은 ‘웰빙’의 물살이 거세다. 숫제 웰빙으로 굽이쳐 흐르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주거공간까지 웰빙의 상표(?)가 붙은 제품을 구입해야만 비로소 안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 ‘웰빙’

김종   2014-08-01

돌명장이라는 하르방을 만났다자신이 조각한 돌하르방처럼 소박한 매무새의 하르방은먼지 한 톨이라도 날려버려야 할 눈물은 없다는 듯그 흔한 마스크 한 장 쓰지 않고 돌의 사연을 온몸으로 흡입하며돌 속에 가부좌로 들어앉아있는 제주의 혼을 끄집어내고 있었다돌은

전숙   2014-07-25

나의 시작은 한 마리의 미세한 정충이었다. 정충은 끝없는 본능의 힘을 따라 용기백배하게 헤엄쳐 가다가 덜컥 생명체로 당첨되어 오늘의 ‘나’로 태어났다. 내 입장에서 대단한 행운이다. 여기까지 지나온 내 생의 굽이굽이를 짚어보자니 내 더듬이가 많이 모자

김종   2014-07-25

그 끝이 어디일까눈을 감고 더듬어도 흐릿한 그대여분명 문턱 언저리쯤사립문 기둥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기도여,만져보고 싶고얼러보고 싶고어름 받고 싶다언제쯤 손을 내밀어주시려는가폭풍 속에서도칠성판의 지옥에서도모든 적의의 숲속에서도견디고 견디고 견딜

전숙   2014-07-18

물길 흐르듯 시간은 간다. 예나 지금이나 그 시간이란 흐름이 사람살이의 영고성쇠를 만들어 왔다. 문제는 빠르기. 뒷짐 지고 팔자걸음 걷자는 건 아니지만 세상의 빠르기 전쟁은 이미 사람의 상상을 넘었다. 이른바 ‘디지털’로 상징되는 시간의 속도 전쟁에

김종   2014-07-18

‘업은 아이 3년 찾는다.’ 건망증이 만든 말이다. 건망증이란 놈은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점령해버린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 뇌리에 스며들어 갖가지 빛깔로 조화를 부린다. 건망증에게 걸려들기만 하면 누구든 떡 주무르듯 딴사람으로 바꿔 버린다

김종   2014-07-11

내가 밥을 고봉으로 먹으면 어떤 작은 별이 밥을 굶어야하고내가 화려한 집을 지으면 지구별의 오염원이 된다반값등록금을 외친 별은 우주바깥으로 벌써 까맣게 사라졌는데그 말을 기억하는 새끼별은쓸데없는 기억을 오래 간직한 벌로 아직도 어둠에서 노숙 중이다시인

전숙   2014-07-11

바위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모래들은무의도에 가보면 안다그곳에는 작아지고 부드러운 일이 필생의 꿈인 바위가 있다부서지고 깎여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몽돌이 되기까지오체투지로 길을 걷는 호룡곡산의 바위들붉은 장미 같은 단심으로 영웅심을 해체하고 있는상

전숙   2014-07-04

현대인에게 고향을 묻는 건 실례다. 아니, 어느 작가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이제 고향은 천국가기보다 힘든, 실체 없는 신기루로나 아른거리고 있다. 살아온 세월 덕인지 때론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게 고향이다. 허나 손을 내밀어 잡으려면 뒷걸음치며 이내 멀

김종   201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