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얼마 전 신문 지상에서 눈여겨지는 기사 하나가 실려 있었다. 非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바로 ‘어머니’(mother)라는 것. 영국이 자기나라 문화홍보를 위해 영국문화협회가 창설 70주년을 맞아 1만개 비영어권극가에서 4만여 명에게 70개의 단어를 고르도록 한 결과, ‘어머니’가 1위에 올랐다 한다. 이 조사는 비영어권으로 한정했고 70개의 단어에 제한했지만 어찌 이것이 언어영역만의 문제이고 정서적 호·불호의 문제라 하랴.  ‘어머니’에 대한 정서적 감도는 종족과 시대와 지역을 떠나 거의 모든 인간들의 본능속의 피돌기 같은 것이 아닐까. 
 
내 어머니가 이 지상을 떠나신 지는 20년도 더 지났다.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신 게 아니고 도둑맞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그 무렵 ‘어머니’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하셨다. 근검과 내핍의 생활에서 영양상태의 불균형이거나 노인네 건강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래서 잡수실만한 음식을 준비하고 좋다는 약을 지어드렸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거짓말처럼 말끔히 나아 정상이 되시고 별 탈 없이 며칠을 지내셨다.

그러던 어머니는 건강이 급전직하로 대단한 통증을 호소하셨다. 부랴부랴 구급차를 부르고 응급실에서 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고 하였다. 실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이었다. 세상에 이같이 기막힌 일도 있을까 싶어 하늘을 보며 탄식을 해도 도대체가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하도 갑작스레 겪는 일이라 손쓸 새 없이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어머니를 그렇게 여의고, 나와 우리 형제는 고아가 되었다. 계실 때는 영원하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번 다녀가라는 전화에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일이 고작이었다. 얼굴만 돌리면 보일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도 천 년 만 년 계실 것처럼 안심하고 어머니의 그 간절한 시간들을 무덤덤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그런데 가시고 나니까 미친 사람처럼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눈물을 흘려도 소리를 질러도 어머니는 끝내 오시지 않았다. 평소 곧잘 부르던 남진의 ‘어머님’을 3년이 넘도록 부를 수가 없었다. 보고 싶은 마음, 죄송스런 마음이 겹쳐 어머니를 생각할수록 해일 같은 슬픔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 왔다.    
 
나는 요즘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어머니’라는 단어에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말 우리 글’의 칭예를 올린다. ‘어머니’는 그만큼 내 자신에게 숙명성이 강한 슬픔과 아픔이 깊게 배여 있다. 자식들을 뒤로 하신 어머님은 뭐가 그리 바쁘실까. 가시고는 이 지상에 소식 한마디 보내오시지 않는다. 평소 우리 오남매를 기르시던 그 눈물의 기도는 어디에 두고 이제는 감감무소식이실까. 보름달을 에두른 달무리를 쳐다보며 눈물 같은 이슬비를 예감한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