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일에 부딪친다. 쉽게 해결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용을 써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날듯이 즐거운가 하면 쓸어내린 가슴으로 생을 포기하고 싶기도 한다. 누구든 길지 않은 생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김종   2014-12-21

그를 응원한다 무조건 응원한다제 쌀독이 비어도 남의 쌀독을 걱정하는 그를 마음을 다하여 응원한다좋은 먹거리 나누자는 그를 사랑으로 응원한다나주를 새벽처럼 지키는 그를 어머니의 행주치마처럼 응원한다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천 년이 그의 배경이다천 년의 바

전숙   2014-12-21

엄마가 된다는 것은앵두 같은 입술과 꿈꾸는 눈빛과산 너머 꽃밭을 버린다는 것이다제 목숨보다 더 귀하고 제 뱃구레보다 더 배부르고제 살보다 더 아픈 살이 생겼다는 말이다엄마의 가슴에는세상에서 가장 깊은 강이 흐른다그래서 ‘엄마’라는 말에서는 강물소리가

전숙   2014-12-14

맞춤형 독서라는 말이 있다. 요긴한 인용문구 하나라도 얻을 양으로 집어 들고 골몰하는 독서, 요즘 내 독서행태가 꼭 이렇다. 정신 못 차리게 쏟아지는 출판 홍수시대에 익사하거나 실종되지 않고 읽을 만한 책을 골라 독서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연말에

김종   2014-12-14

풍경 따라 길을 나섰다. 강물이 뻗어 내린 지리산 겨드랑이까지 간지럼 태우며 속삭이는 섬진강의 품새가 여간 귀엽고 재미있다.내가 강물 곁에 동행하는지 강물이 나와 어깨동무하고 길 가는지 따위는 알 바 없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물과 함께 가는 섬진강 길

김종   2014-11-28

바보화투를 배웠다자신의 패를 본인은 모르게 뒤집어들고아무거나 내고 복불복으로 가져오는 놀이다뇌회로를 번개처럼 돌리며 친 정식 화투놀이에서는 꼴찌만 하다가바보화투를 치니 일등을 했다내 복에 웬 난리야일단 바보처럼 참석자 모두에게 웃음을 유발하니바보게임

전숙   2014-11-28

나는 아마도 이 길을 만 번쯤 걸었을 것이다어느 날은 비가 왔고어느 날은 안개가 끼었고어느 날은 달빛이 좋았다어둠이 지배하는 이 길을내가 지치지 않고 되 걷는 힘은달빛이 좋았던 그 하루 때문이다.

전숙   2014-11-24

우리 사는 일에도 자신을 베풀면서 ‘착한 손’으로 살아간다면 그 또한 우러러 볼만한 적선의 삶이 아닐까. 구색 맞추자고 악의 편에 서다 보면 설사 그것이 ‘필요악’이라도 해악 이상의 의미는 지닐 수는 없을 터. 사회란 내가 지키니까 상대도 지킨다는 상

김종   2014-11-24

밤새 태풍이 불었다오백년 동안 마을을 품었던 정자나무 우듬지가 찢겼다덜렁거리는 가지를 마을 청년이 잘라냈다우리는 모두 아연했다나무는 안쪽이 텅 비어 있었다보물을 허겁지겁 도둑맞은 금고 같았다아름드리 몸통을 들여다보니 아궁이처럼 캄캄했다오장육부와 그것들

전숙   2014-11-17

새 차를 사자마자 클랙슨부터 들어냈다. 클랙슨을 떼겠다고 카센터를 찾았을 때 주인이나 주변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여도 ‘혹시 당신 부족한 사람 아니냐’는 투였고 내 차 가지고 내가 주문하는 데도 찻값 떨어진다는 걱

김종   2014-11-17

낙하산은 종이다일단 주인의 등에 업혀 뛰어내리면 그의 세상이 펼쳐진다주인에게만 허리를 굽히고 손을 비비면 발 아래 세상은 그의 안방이다하늘에 떠있는 수분 간이 그의 광영의 시간이다세상이 낙하산 발 아래 엎드려있다낙하산은 스스로 잘난 체다위엄과 권위가

전숙   2014-11-02

김종 시인이 친일인명 사전 편찬을 위해 친일행위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의 ‘불편한 진실’ 등을 3회에 거쳐 밝힌다. 1회 ‘친일청산, 그들만의 주홍글씨인가’, 2회 ‘역사에서 본 친일’ 3회 ‘편향된 욕망 속의 친일’ 순으로 연재한다. 우리들로 하여금

김종   2014-11-02

세상의 위로가 된 나이팅게일의 꿈을 건너다보며촛불 같은 작은 기도가 맨 처음의 징검돌이 되었습니다어머니 같은 손바닥이 나를 등지고 세상을 향한다는 것은 이름도 없이 밤하늘을 밝히는 은하수의 작은 별들처럼나의 빛깔과 향기를 지우고 나의 에고를 버리고 썩

전숙   2014-10-27

김종 시인이 친일인명 사전 편찬을 위해 친일행위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의 ‘불편한 진실’ 등을 3회에 거쳐 밝힌다. 1회 ‘친일청산, 그들만의 주홍글씨인가’, 2회 ‘역사에서 본 친일’ 3회 ‘편향된 욕망 속의 친일’ 순으로 연재한다. 우리들로 하여금

김종   2014-10-27

햇밤을 삶는다생밤은 비슷한 크기와 비슷한 빛깔로 올망졸망 냄비에 들어앉아있다푹 잠기도록 물을 부어 날것의 시간을 익힌다냄비 뚜껑을 여니 비슷했던 얼굴들이 확 달라졌다밤의 일생이 색인표를 달 듯 빛깔로 정리되었다저를 대표하는 선명한 밤색, 검은색, 누르

전숙   2014-10-19

김종 시인이 친일인명 사전 편찬을 위해 친일행위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의 ‘불편한 진실’ 등을 3회에 거쳐 밝힌다. 1회 ‘친일청산, 그들만의 주홍글씨인가’, 2회 ‘역사에서 본 친일’ 3회 ‘편향된 욕망 속의 친일’ 순으로 연재한다. 우리들로 하여금

김종   2014-10-19

웃음은 마음의 보석이다반가울 때 좋을 때 사랑스러울 때마음의 보석이 영글어간다석류알처럼 참지 못하고 마음이 헤벌어져 보석이 쏟아져나온다기다리는 일도 웃음이고 만나는 일도 웃음이다터널을 빠져나오면 푸른 하늘이 보이듯이죽음 너머 맑고 푸르고 투명한 웃음소

전숙   2014-10-10

10월은 수확의 계절이다. 눈 가는 곳마다 곳간이다. 모두들 배 불룩하게 열매를 임신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의 헛걸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고 운주사로 향했다. 따가운 가을 햇살 탓인지 자꾸만 목덜미 부근이 들썩거렸다. 영구산 운주사(靈龜山雲住寺)

김종   2014-10-10

젖을 물리고, 젖으로 가득 부푼 아기의 볼따구니를 웃음으로 바라보는 어미의 눈길이 한글이다그 눈길에는 사랑이 박음질로 박혀있다한글은 까치밥이다한겨울 텅텅 빈 자연의 곳간에서 허기진 까치가 굶어죽지 않도록 남겨둔 눈물이다한글은 홍시다이빨 없는 나이든 호

전숙   2014-10-03

‘화첩일기’ 20에 썼던 「장가계를 다녀와서」를 읽은 두 분의 독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장가계의 서체적 독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가계의 지리지형적 관광에서 나는 이곳 산천이 보여준 서체적 암시를 강하게 받았다. 뭐 이름부터가 어필봉이

김종   201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