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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봄 손님 1 - 매화꽃
“매화꽃을 닮으셨군요”미안한 일이 발생했다 매화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어느 손님으로부터 듣게 된 것이다꽃에 비유될 이미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내게 이런 얼척없는 비유를 막 던지는 분도 계시는구나 그것도 앞장서서 봄 창을 열고 오는 어마어마
홍관희 시인   2024-02-26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사랑 1그램
그녀와 함께 사는 동안 그녀에게서 사랑 1그램을 건네받았습니다일생 동안 근육을 키워 온 마음으로도 다 받아 들기에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사랑 1그램내 모든 것을 내어 주어도 그 빚을 다 갚을 길이 없을 것 같은 그녀가 내게 준 사랑 1그램을 떼어 먹으
홍관희 시인   2024-02-04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파리채로 시를 잡다
가난은 휴일도 없는지 일꾼이 되라 일꾼이 되라 하고 엄동설한 난방을 해 봐도 좀처럼 금고의 온기가 오르지 않았다 손님에게로 향기로이 스며들어야 할 커피는 침묵이 깊어진 그라인더에 갇힌 채 엄혹히 다가올 분쇄의 시간을 묵상하며 쓰디쓴 운명을 무지개 맛으
홍관희 시인   2024-01-21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드들강 1
사는 동안 건너야 하는 강이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5분 거리에 있는 남평역에 닿으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고서야 닿을 수 있는 곳이 남평역만은 아니다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너에게로 가 닿기 위해서도 강을 건너야 한다 나는
홍관희 시인   2024-01-01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나이
누가 입법을 했는지는 몰라도 인생에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용시간 총량제와 사용시간 자동납부제가 작동되고 있는 것 같다 사용한 만큼 자동으로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통신요금이나 각종 공과금처럼 사용한 만큼 인생 계좌에서 시간이 빠져나가
홍관희 시인   2023-12-17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설어가 내리는 마을
저리도 고운 설어雪語들이 지상의 낮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내려와 포근히 녹아드는 걸 보면 시대의 나침반을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살아온 아름다운 시인들의 시를 찾아 읽던 하느님이 마음에 드는 시어詩語들을 골라 지상의 낮은 사람들 가슴에 가서 닿으라고 송이송
홍관희 시인   2023-12-10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나무 한 그루 1
1한 그루의 나무인 줄 알았는데 살다가한 그루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네내 삶의 뜨락에햇살 품은 나무들 여럿 함께 있었네 지나온 모든 시간이 모여오늘 새로운 하루를 열듯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는 거라며세월만 한 이야기가 들어와 앉은 나이테 그곳에도 크고
홍관희 시인   2023-11-26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모든 날개를 잃은 새
아침 햇살이 불러 가게 문을 열었는데 1층 테라스 바닥에 새 한 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창에 머리가 부딪치는 찰나 유언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수천수만 리 창공을 날아온 일생의 모든 날개가 새를 떠나갔을 것이다 새가 창공을
홍관희 시인   2023-11-13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이삭
어머니 말씀에가난한 이들은 이삭을 주워 목숨을 붙였다 했다아버지 말씀에의식 있는 부자는 가을걷이 때 일부러 이삭을 남겼다 했다...... 부자는 자신의 여유를 가볍게 남겼을 뿐인데가난한 이들은 목숨을 주웠고 ...... 언어의 이삭을 만지며 나는 꿈꾼
홍관희 시인   2023-10-30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드들강 3 -벼
강물은 저 홀로 깊어지는 법이 없었다서로에게 흘러들면서 깊어지는 것 말고는다른 길이 없었다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산을 품고 있듯여물어 가는 벼의 낱알 하나하나에도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허기진 밥그릇 같은아부지와 엄니의 눈빛으로 벼들은 익어 갔고그렇게 익
홍관희 시인   2023-10-16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사모곡
엄마 생각이 들라치면엄마는 언제든지 내게로 오고 계시는 중이다얼마나 오랫동안 엄마가 오고 계시는지생각 이전부터 오고 계시는 중이다이토록 엄마가 내게로 줄기차게 오고 계시는데이승이며 저승이며 우주의 온갖 경계가 다 무어다냐처음 그 자리 자궁에서부터 끝없
홍관희 시인   2023-09-25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눈빛을 마주쳐 주던 작은 별 하나 보이지 않고허공이 그 흔적을 지우고 있다 별은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그 별을 불러 준 사람의 가슴속으로자리를 옮겨 앉는 것이다 홍관희 시집 『사랑 1그램』, 에서
홍관희 시인   2023-09-10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드들강 2
나의 선택은 늘 외로웁다 꽃이 보고 싶어길을 나섰는데길이 갈라지는 곳에는늘 강이 흐르고 있었다강을 건널 것인가 강변을 따라 걸을 것인가 살아간다는 건 강을 건너거나 강변을 따라 걷는 일 시방 나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나를 넘어설 것인가 나에
홍관희 시인   2023-08-27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그림자
앞서가는 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면길이 나 있었다아부지의 생이었다아부지는 일생 동안길을 만들어그림자 속에 숨겨 두셨다내가 앞서가는 그림자 위를 지나자그 그림자는 지워지고내 뒤로 새로운 그림자가 깔렸다앞서가는 그림자를 닮은나의 생이었다지워진 줄 알았던 그
홍관희 시인   2023-08-06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반달이 품은 온달
원치 않아도 절반쯤 경계선을 그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개 절반쯤이다 바이러스성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세상에진짜 전염성 바이러스가 떴다 마스크 반 얼굴 반으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살을 뺀 건지 지워져 버린 건지에덴의 길목에 쓸쓸히
홍관희 시인   2023-07-24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제주 바다 수평선이 가르쳐 준 것
그녀가 유난히 가고 싶어 하는제주 바다를 찾아가면거짓말같이 그곳에사랑이 있었다이번 여행길에도 제주 바다는우리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기다란 수평선을 그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일에 지쳐 힘없이 바다로 낙하하는 해를지지하고 있는 수평선을 바
홍관희 시인   2023-07-10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강물 위에 쓴 시 2
드들강 징검다리 위에 쭈그리고 앉아시어를 낚다가짓고 있던 문장을 그만 강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물에 젖은 채 어디론가 흘러가는미완의 문장내 주변을 맴돌던 작은 물고기들과삼삼오오 모여서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던 물오리들이물속에 빠진 그 문장을 떠받치며문
홍관희 시인   2023-06-26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모자의 무게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문밖까지 마중 나온 만삭의 아내가온종일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겨 주었다회사 로고가 또렷이 박힌 땀내 나는 모자를 벗겨 주었다나비처럼 가벼운 모자를 한 개 벗었을 뿐인데커다란 산을 한 개 내려놓은 듯했다달랑 모자 한
홍관희 시인   2023-06-11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찌그러진 동전
찌그러진 동전으로는 공중전화를 걸 수 없지만 찌그러진 동전으로도 전화 요금을 낼 수가 있다 찌그러진 동전은 볼품이 없고 외롭기는 하지만 찌그러진 동전은 어디에서나 어김없는 10원짜리 동전이어서 언제나 에누리 없는 10원만큼의 일을 하고 죽을 때까지 1
홍관희 시인   2023-05-29
[홍관희의 시시한 하루] 무등산 낮달
1 새들이 나는 걸 포기하지 않듯 우리는 오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 몸을 기어오르는 개미가 미안한 것처럼 산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무등산을 오르는 건 미안한 일이기는 했다 가난만큼이나 힘겨운 가파른 산길을 만난 친구가 작은
홍관희 시인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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