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사랑을 사탕으로 생각하며 빨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시인이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이란 산문집을 냈는데 사랑은 이처럼 감미롭고 짜릿하다. 입안에 넣어 혀로 굴리면서 단맛을 빨아먹을 만큼 사랑은 신나고 달콤하고 행복하다. 솜사탕이든 콩사탕이든 왕방울사탕이든 녹지 않는 사탕은 그 어디에도 없다. 허나 녹아드는 사탕의 감미로움 또한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턱이 없다. 그만큼 사랑을 사탕이라 생각한 내 자신의 생각에 잘못은 없다.
 
그러나 사랑이 어디 달콤하기만 한가. 때로는 사생결단이 덤비기도 하고 목구멍 가득 쓴물이 넘어 오는 고역을 겪거나 밧줄 없이 절벽을 오르기도 한다. 헤쳐 갈수록 시련에 찬 사랑을 절망에 가깝도록 회의하기도 하는 것, 이게 인간의 사랑만인가. 신들도 사랑 앞에서는 인간과 똑같이 결투하고 갈등하고 갖가지 술수와 야합으로 합종연횡을 거듭한다. 사랑 앞에 왕권도 벗어놓고 부귀영화도 팽개친 이들을 보면 어쩌면 저럴까 싶다가도 내 자신이 그 같아도 결론은 같았으리라. 사랑이 뭐 길래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리는가. 사랑이 있음으로 비로소 천지에 음양이 생겨나고 화복길흉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굽이치는 것은 아닐까. 사랑, 그것 많이도 수수께끼다. 사랑 그것 많이도 사탕이다.
 
상식이지만 사랑은 그 종류만도 헤아리기가 어렵다. 사랑을 교환한 사람들의 모든 경우가 바로 사랑의 종류였을 테니까. 그리 보면 이 세상에 사랑만큼 복잡한 것도 미묘한 것도 없을 성 싶다. 사랑은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소유한 生의 총량이며 필요 충분 적 에너지는 아닐까. 그 에너지는 흘러서 용암처럼 생명체를 뜨겁게도 하고 세상만물을 불타게도 하지만 혹한을 밀어내고 세상만물을 꽃 피어나게도 한다. 어쩌면 사랑을 꽃피는 화원에 견주는 건  어떨까. 색깔도 크기도 피어나는 시기도 제각각 다르기에 꽃들은 저마다 아름답다. 꽃은 악마도 좋아한다는 말을 나는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이 말은 사랑으로 가져가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다. 절대한 사랑은 악마의 심장에도 감동의 전류를 보낼 테니까.
 
요즘의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어릴 적에 우리는 제깟 게 얼마나 안다고 이성간의 일에 무척이나 신경을 곤두세웠다. 삼자적인 입장에서 이성끼리라면 조금 가깝다 싶은 관계를 그냥 두고 보지를 않았다. 불편한 속내를 뒤틀어서 마구잡이로 까발리고 다녔다. 시쳇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의 마타도어가 무슨 대형 사고나 난 것처럼 부풀려졌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랑이 또아리 틀고 있다. 그만큼 사랑은 심술궂고 방정맞고 상종 못할 요물이다. 그리스 사람들의 신화의 역사는 신들의 갈등을 끌어들여 인간 자신들의 사랑을 설명하고 보여주기 위한, 조금 가벼운 말로 헤프닝의 역사였다. 그러나 사랑은 사탕이란 말, 맞다. 적어도 사랑의 단맛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그 공허를 채울 만큼 진정이 담겨야 한다. 사랑은 바톤첸지로 오고 가는 밀물썰물이 아니다. 너와 내가 밀고 당기는 ‘밀땅’도 아니다. 그래서 사랑이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에서 단골 주제인 것은 그 역사가 길다는 뜻이기도 하고 필수불가결한 에너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문학에서 사랑이 빠지면 무엇이 남을까. 우리가 성경에서 읽었던 ‘쭉정이’만 남을까 삭정이만 남을까? 어쩌다 중국 같은 나라에서 로맨스 없이도 성공한 삼국지, 서유기 등이 있었다. 허나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로 치부할만하고 문학이나 예술의 영원한 테마가 사랑인 것은 인간이 쌓아올린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아니었을까. 그리 보면 문학에서 ‘사랑타령’은 장타령이 아니다. 사랑은 위대하기에 우선 하늘도 모를 만큼 은밀해야 한다. 설사 부모자식간의 사랑일지라도 불불불 기어가는 게 싸담듯 나풀거리지 않게 간수해야 향기가 나고 아름다워진다.
 
사계절 꽃피는 화원은 사랑의 결과물이다. 눈길이 머무는 곳 어디에도 사랑은 연두 빛 생명을 노래하고 붉은 열매를 뽐낸다. 지난 계절, 산자락에 얼굴 가리고 펑펑 울어보고 싶었던 편지 한 통을 여직 부치지 못 했다. 부칠 수 없었기에 산자락을 가리개 삼아 펑펑 울 수 있었던 것이다. 오천년 전에 사랑하던 두 남녀가 전설 속에 묻혔다가 화석으로 발견되었을 때의 그 가슴 환한 감격처럼 사랑이란 어느 시대건 진행형이지 완료형은 없었다. 그리 보면 미움을 덮어 누를 만큼 품이 크고 미움보다 독한 맹독성 집착이 사랑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위해 슬픔도 미움도 청춘의 에너지에 날개를 단다. 날개 같은 사랑을 추진력 삼아 상처마다 촉을 틔워 우듬지 키우는 나무를 본다. 날개 꺾인 내 지난날의 사랑 위에 봄바람 같은 열정이 지금 바삐 뜨거워지고 있다.

다시금 되뇌인다. 사랑은 사탕이란 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