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 시인이 친일인명 사전 편찬을 위해 친일행위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의 ‘불편한 진실’ 등을 3회에 거쳐 밝힌다. 1회 ‘친일청산, 그들만의 주홍글씨인가’, 2회 ‘역사에서 본 친일’ 3회 ‘편향된 욕망 속의 친일’ 순으로 연재한다. 우리들로 하여금 친일과 반일의 경계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글이다. <편집자 주>

▲ 김종 시인(화가)

1910년 8월 22일은 한일합방 조약이 강제적으로 조인된 날이다. 양국 합방의 일은 외국에만 통고하고 국내에는 일주일 뒤인 8월 28일에야 발표하였다. 이리하여 국호도 「대한제국」에서 「조선」으로 고치며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운영하던 조선조는 27대 519년 만에 종말을 고하였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팔고 그 대가로 75명의 새로 생긴 귀족이 작위를 받고 (후작6, 백작3, 자작31, 남작 45등) 상금을 받았다.

“당시 정부의 고관으로서, 국록을 먹던 자로서 누구 한 사람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한 사람이 없었으니, 너무나 쓸쓸한 망국이었다.”(『이야기한국사』p.438 )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민중들이 목숨 걸고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감격의 물결을 타고 전국에 퍼져갔다. 3?1운동의 참가인원은 200만을 넘었고 참집(參集) 회수는 1,500여회로 전국 218개 군 가운데 211개 군이 시위를 벌인, 문자 그대로 거족적인 저항운동이었다. 그 결과, 피검자수는 47,000여명, 사망자 수는 7,500여명, 부상자 수가 16,000여명을 헤아렸음은 우리의 독립 열망과 일제의 학살과 탄압이 얼마만큼 가혹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민중들의 항일에 대해서는 일제치하에서의 생존을 거부하고 ‘적과는 한 치의 타협도 거절하는’ 순국(적극적인 항일 투쟁),‘ 2인 이상 모이면 독립에 대한 이야기였고, 대소 행사도 이면은 독립운동과 관련되었고, 기생, 걸인, 총독부의 한국인 관리까지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배일사상을 가지지 않은 자가 없었다. (친일 주구(走狗)는 제외)(최영희 외『일제하의 민족운동사』pp47-59 참조).

우울한 전제

여기에서 주목할 바는 ‘총독부의 한국인 관리까지’라는 부분이다. 생계 때문에 총독부 관리로는 살아가지만 내심마저 일제에 동화되고 저들의 발전을 돕는 것은 아니었다. 표면은 순응한 척 잠잠해도 속마음은 늘 활화산 같은 독립의 불씨를 지펴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망한 세월은 가고 미래의 시간은 막막하기만 한 것, 어찌 저들에 대한 애국항일의지야 잠들 수 있었겠는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며 성난 군중에게 쫓기던 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았던 예수의 모습을 떠올린다. 물론 군중 편을 들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다면 판단은 한결 쉬웠을 터. 단죄는 순간의 통쾌함은 있을지 모르나 대양 같은 진실은 담아낼 수가 없다. 그 위급지경에서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여인을 구한 예수는 성인의 반열을 넘어 신격(神格)을 얻었다.

 함석헌 선생도『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우리에게 해방은 1945년 8월 15일 새벽에 그야말로 도둑처럼 밀어 닥쳤다.’고 썼다. 춘원 이광수 선생도 반민특위에서‘ 조선이 해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하였다. 기막힌 말이지만 현실이었다. 필자에게 그 시절이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하면 실로 모골이 송연하다. 물론 조국이 백척간두임에 상황의 칼날에 맞서지 못하고 척추를 구부리거나 머리를 숙인 일은 천추에 씻지 못할 민족배반의 죄악이다. 그러므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던 애국선열들의 노력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며 모택동의 말처럼 ‘풀잎도 바람 따라 눕는’, 민초들 모두가 영웅적 행동에 동참 할 수 없다는 것이 세상사임을 떠올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