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새 차를 사자마자 클랙슨부터 들어냈다. 클랙슨을 떼겠다고 카센터를 찾았을 때 주인이나 주변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여도 ‘혹시 당신 부족한 사람 아니냐’는 투였고 내 차 가지고 내가 주문하는 데도 찻값 떨어진다는 걱정까지 붙여서 한사코 말리는 것이었다. 하여간 내 차에서 클랙슨을 떼어내는 데는 더 많은 옥신각신과 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착한 손’으로 받으면 모두가 積善

차에서 클랙슨을 들어내겠다고 작정하기까지는 나름의 결심(?) 같은 것이 필요했었다. 나 자신 매사에 참을성 적고 결벽증 심하고 나 편하면 눈치 보지 않고....? 그리 보면 나 또한 배달겨레의 단점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정직한 한 후예임이 분명했다. 큰돈(?) 들여 새 차를 사고 기껏 한다는 결심이 클랙슨이나 들어내는 일이었으니 카센터 직원의 생각에도 불문가지의 비정상이었을 터. 소위 그 누르고부터 보는 나의 잘못된 운전습관 때문에 이런 저런 사람들이 놀라서 뒤돌아보는 둥 그간에 겪었을 심리적 불편 등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에 편치를 않았다. 그래서 새 차 인수하고 소위 무사고 고사 따위는 제쳐 두고 클랙슨부터 떼어 내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대단한 만류에도 나는 작정한대로 경적 장치를 들어냈다. 그러면서 나 자신 부터가 놀라고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과연 클랙슨 없는 운전이 가능할까 나 자신부터가 반신반의였다. 클랙슨 떼는 일은 집사람부터가 반대한 일이었다. 위급지경을 묵묵부답으로 운전할라치면 복장 터질 일이 한둘이 아닐 턴데 클랙슨을 누르지 않고 과연 가능하겠는가를 사람마다 보태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다리면 자동빵으로 상황은 풀려 간다’며 짐짓 느긋했다. 정말로 그랬다. 운전자치고 빨리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고 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운전의 결론은 이 같은 하나인 데 ‘나 먼저’ 라는 조급증이 배려하지 않는 무례를 나쁜 문화로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버리지 못한 버릇 땜에 클랙슨 누르는 자리에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있었다. 떼지 않았다면 여지없이 눌러댔을 클랙슨으로 그간에 많은 사람이 놀랐을 일을 생각하면 그나마 미안 닦음이 된다. 그리 생각하면 클랙슨 떼어낸 차에서 공갈 젖꼭지 빨 듯 별 시비 없이 클랙슨 자리를 눌러대는 내 자신이 기특하기 까지 했다. 공갈 젖꼭지 빠는 아이는 몇 번 속으면 자연히 젖에서 입을 뗀다. 내 손가락도 점차 습관적인 누르기를 포기할 것이고 그런 다음 나는 클랙슨 없이도 운전하는 소위 ‘1cm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 습관 무섭다지만 나쁜 습관 고치는 것도 그리 시간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클랙슨을 누를 일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참고 기다리면 그만이었고 그래도 안 되면(그런 일은 없었지만) 한두 번 하이빔으로 신호를 보내면 서 내 스스로가 먼저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무슨 권리로 남을 놀라게 하면서까지 클랙슨을 누를 수 있단 말인가. 이순을 넘기고 고작 클랙슨이나 떼어낸 소시민으로 살아가지만 이나마 실천하고 자족하는 것만도 적이 안심이 된다. 세상에는 성인군자만 모여 살수는 없다. 작고 크고 적고 많고 가늘고 굵고 좁고 넓고 높고 낮은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비빔밥처럼 비벼져서 이 지상이 허용한 시간만큼을 보내다 떠나가는 것. 사는 일에 대한 심정적 부채감(負債感)이 때로 도덕이 되고 윤리가 되는 건 이런 때문이 아닐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