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우리 사는 일에도 자신을 베풀면서 ‘착한 손’으로 살아간다면 그 또한 우러러 볼만한 적선의 삶이 아닐까. 구색 맞추자고 악의 편에 서다 보면 설사 그것이 ‘필요악’이라도 해악 이상의 의미는 지닐 수는 없을 터. 사회란 내가 지키니까 상대도 지킨다는 상대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공동의 광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진 ‘다른 1cm’는 상대의 ‘다른 1cm’를 얻어 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양심 냉장고’, 장애인 부부에게 돌아갔다

카센터에서 경적장치를 떼어내기까지는 거슬러 나의 25년 전의 일본생활로 이어진다. 나는 그때 교토에 있는 동지사대학에서 1년간의 연구 생활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향하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서 화살처럼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일본 생활 1년에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게 클랙슨 소리였다. 아, 내 귀를 의심하고 기억을 더듬어도 일본에서의 시간에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란 담겨 있지 않았다. 

작은 골목길의 ‘멈춤’ 위에도 반드시 차를 세우고 조용히 다음 신호를 기다리던 그들이 떠올랐다. 정체된 차량이 장사진을 이뤄도 끼어들거나 클랙슨을 누르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한때‘이경규가 간다’라는 방송 프로에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틀림없이 정지선에 멈추던 일본 사람들을 본 일이 있다. 그때‘양심 냉장고’를 내걸고 신호 잘 지킨 운전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장애인 부부였음을 생각하면서 나 같은 성한 사람들은 내심 많이 부끄러웠다. 사회지도층입네 오피니언 리더입네 노블리스 오블리제네 저마다 까치 뱃바닥처럼 자신만을 치켜세우지만 실인즉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선진국이네 그 진입의 문턱이네 따위의 설레 방귀는 우리 국민의 도덕적 수준이 이웃한 중국보다 조금 낫거나 비슷한 정도임을 보여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른 선진국보다 몇 십 년 뒤졌다는 기술문명은 그 간격이 많이 좁혀졌고 품목별로는 우리가 우뚝한 1등도 한 둘이 아니다. 청결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제는 우리가 지구촌 사람들을 상대로 화장실 문화 축제를 펼치고 주도하는 주최국이 되었으니까.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임에도 세계 경제력 10위라는 사실 또한 파천황적이다. 그럼에도 국민의식은 매사에 ‘나는 괜찮고 너는 틀렸다’식으로 탈법을 둘러대는 억지가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사례가 지금도 빈번하다. 일본 사람이라고 조급한 일 없겠는가. 그들은 새치기 따위의 억지는 자신을 향한 부메랑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칼처럼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당장은 곶감이 달다 하나 시간이 가면서 언 발의 오줌처럼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일본에 갔을 때 우리 GNP는 5000불이고 그네들은 24,000 불이었다. GNP 가지고는 어림잡아 우리가 5/1인 셈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24,000 시대가 되면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주차된 저네들의 문화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줄 것이라 생각 했었다. 그 후 IMF가 되어 GNP 까먹는 환란을 겪었지만 다시금 상승한 지금의 우리는 과연 GNP 만큼의 준법성, 도덕성이 지켜지고 있는가. 
 
‘다른 1cm’는 나부터 행복한 일

사람 사는 세상은 피붙이처럼 각처의 냇물이 만나서 이룬 드넓은 바다가 아닐까. 저마다 다른 1cm가 갖는 의미, 이는 사는 일의 크기에 비추어 견줄 데 없이 미미할지 모른다. ‘다른 1cm'는 하도나 작고 보잘 것 없어서 모래밭에서 바늘토막 찾기만큼이나 어려울 수 있다. 또한 그 따위가 무에 그리 신경 쓸 일이냐고 못 마땅해 할 수도 있다.

누구든 남을 상대하여 ‘장애물’ 되기는 쉽다. 장애물인 것도 모르고 또 다른 장애물을 꿈꾸기도 한다. 죄책감 따위는 마비된 가슴으로 무시하거나 모른 체 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나만의 다른 1cm를 실천하는 일은 남과 비교하여 기껏 내차에서 죄 없는(?) 클랙슨이나 들어내는 일이지만 이마저 저마다의 부뚜막에 좀도리쌀 한줌씩을 보태는 일이라 여겨진다.

1cm 다른 일이 모이고 모여서 바퀴가 되고 더불어 대동 세상을 굴리는 것은 아닐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자신만의 다른 1cm는 그래서 상대의 다른 1cm와 어울리면서 더불어 살맛나는 사람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의 다른 1cm 때문에 내 자신이 먼저 행복하다는 사실은 바꾸면, 다른 1cm를 가진 상대 또한 그만큼 행복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