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풍경 따라 길을 나섰다. 강물이 뻗어 내린 지리산 겨드랑이까지 간지럼 태우며 속삭이는 섬진강의 품새가 여간 귀엽고 재미있다.

내가 강물 곁에 동행하는지 강물이 나와 어깨동무하고 길 가는지 따위는 알 바 없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물과 함께 가는 섬진강 길은 운전대 두드리는 장단에 맞춰 절로 콧노래가 흘렀다.

바야흐로 물오른 춘삼월이 연초록 더듬이로 세상을 넘치게 불 켜고 있다. 의구하던 산천경개에 새로운 판 갈이가 한창이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잔잔히 녹아서 크고 작은 계곡을 열어가고 있다. 든든하게 발기된 호남정맥의 저 당당한 군봉들이 줄타기하듯 세상을 이토록 높은 데까지 낭창낭창 치켜세웠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만화방창이 수선스럽다. 운 돌아온 대가 집 신바람에 온 동네가 바빠진 듯 지난 계절의 중무장을 풀어헤친 대자연이 삐까 반짝 참 풍성하더니 입추처서 지난 오늘은 제법 노릿 노릿해지고 있다. 참 많이도 의욕적인 계절에 이좋은 경치에 와서 나 또한 저 산자락 억새만큼이라도 히끗거리며……

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에서 흐름을 시작했다 한다. 이 흐름이 남해바다가 되기까지 환호작약 서로 만난 네 개의 지류를 합하여 무려 265개의 크고 작은 물줄기가 인간세상의 인연처럼 수많은 공덕으로 몸 보태고 몸 보태고 널널한 가락으로 길 찾아가는 중이다.

흐르는 강물이건만 요즘은 수량도 예전 같지 않고 물 한 쪽박 떠가는 일도 공덕을 덜어내는 것만 같아 미안하다. 통상적인 표현으로 섬진강은 남도 산야의 동맥이라는 말이 제격이겠다. 이 강이 아니라면 어찌 남도적 풍수에서 빚어진 기질과 리듬을 얘기할 수 있으랴. 강은 흐르면서 인심을 옮기고 여기저기 정신과 표정과 말소리를 꽃피어나게 한다.

섬진강은 원래 모래내, 다사강, 두치강 등으로 불렸었다. 그러던 것이 고려 말에 와서 섬진강으로 고쳐 부르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이 무렵 하동 쪽 강을 타고 왜구들이 침입해 오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몰려와서 밤낮 없이 울부짖자 왜구들이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다.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따서 고쳐 부른 강이건만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侵入路였고 동학혁명 때에도 왜군에게 쫓긴 동학군이 최후를 마친 장렬한 아픈 역사가 김 서려 있다.

풍경 따라 나선 길, 수질도 주변경관도 객담을 늘어놓자면 한이 없겠다. 다만 한 가지, 이 나라, 가슴도 저린 반쪽의 국토에는 5대강-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이라는 이름의 동맥이 있어 가뭄을 적시고 홍수를 받아갔다. 남도교를 지나자 모랫바닥을 ‘거랭이’로 긁어내는 재첩 잡는 인파들이 붐볐다. 피나게 긁어내는 강바닥인데 강물의 뚝딱 방망이는 여전하여 귀족어종인 은어와 누치와 참게가 던지는 그물마다 파닥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