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 시인이 친일인명 사전 편찬을 위해 친일행위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의 ‘불편한 진실’ 등을 3회에 거쳐 밝힌다. 1회 ‘친일청산, 그들만의 주홍글씨인가’, 2회 ‘역사에서 본 친일’ 3회 ‘편향된 욕망 속의 친일’ 순으로 연재한다. 우리들로 하여금 친일과 반일의 경계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글이다. <편집자 주>

역사라는 개념의 말을 처음 사용한 사가(史家)는 희랍의 헤로도투스와 투기디데스이다. 이 두 사람은 전쟁사를 기록함에 있어 한 사람은 역사를‘탐구(探究)적’측면에서 보았고 다른 사람은‘하나의 중요한 의미(意味)’를 찾으려 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인류사에 전쟁이 발생한 원인을 규명하려 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들 두 사가(史家)는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현재적 문제와 연결시켰다.

헤겔은 ‘역사라는 낱말은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을 종합하고 있으며 사건 자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사건의 기술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총 4,389명의 '친일혐의' 인사 중 문화예술인의 숫자가 당초 예정되었던 174명보다 11명이 준 163명을 발표하였다. 장르별로 보면 문학인이 40명, 음악·무용인이 43명, 영화인이 30명, 연극인이 27명, 미술인이 23명이다. 처음 발표된 문화 예술인 중에는 연구소 측의 일방적인 조사결과나 판단에 밀려 억울한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이 법정소송 등으로 항의하거나 시인 정지용(鄭芝溶), 소설가 김정한(金廷漢)의 경우처럼 "친일적 성향을 보인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글이 한 편 있지만 자발적인 것으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명단에서 제외(?)하기도 하였다.

연구소 측은 "연구 인력이 부족하고, 조사비용이 과다하여 증거자료를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었음"을 실토한 바 있다. 더불어 북한과 해외자료의 경우가 더 그렇다고 한다. 연구소 측은 또 일부 형평성을 잃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수의 좌파인물이나 월북인사들이 수록돼 있고,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고 기준에 부합하면 어떤 인물이라도 사전에 등재 한다."고 해명했지만 이 모두가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친일은 어디까지 원죄인가?>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주인공 한나 슈미츠가 아우슈비츠 학살범죄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을 때의 진술에 기대면 수용소에 들어간 것이 본인의 선택이었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그녀는 경비원을 뽑는다기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진술한다. 수용소 경비원으로 취직한 그녀는 폭격에도 유대인 수감자들을 좁은 공간 속에 가둔 채 통제했고 이 일이 참사로 이어졌다. 왜 풀어주지 않았느냐는 재판관의 물음에 그녀의 답은 이렇다.“온 마을이 불탔고 모두가 뛰쳐나오는 상황에서 수감자들을 쉽게 풀어줄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수감자들을 책임져야 했으니까요.”

나치전범재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몇 가지 물음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유죄라고 할 수 있나, 그녀의 행위가 의도적인 것이었는지 아닌지를 그리 쉽게 판별할 수 있나, 당시엔 합법적인 행위에 대해 현재의 관점에서 판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등의 물음이다.

친일을 규명하여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자는 현재의 시간부터 한일합방 때까지를 거슬러 가면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 이뤄진 친일 행위에 대해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시각에서 어느 정도 명확하고 객관적일까. 복거일 씨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 친일문제』는 친일행위를 판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친일행위는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식민통치 시기의 어떤 행위가 친일행위로 비판되려면 그것은 불법적이고, 자발적이고, 조선인들에게 해로웠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을 때에만,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