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사이에 먼저 선장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사무장! 오늘 바람의 세기가 이렇게 변덕스러운 것이 수상쩍네. 구름과 눈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는 폼이 큰 바다로 나가면 험악한 파도를 만날 듯 두려운 생각이 드네.""선장님, 한라산뒤쪽에서 회용돌이

신광재 기자   2007-03-16

새벽같이 일어난 최부는 하늘을 쳐다보며 일기를 살폈다. 사실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늘도 기상상태가 좋지 못하다. 1488년 윤 정월 초사흘, 매서운 칼바람이 코끝을 갉아낸다. 최부 일행이 타고 갈 수정사의 수정호는 전형적인 한선이다. 승선인원 43

신광재 기자   2007-03-09

삼사석 앞에 김씨가 무릎을 꿇고 앉았고 나머지 삼십 여명이 나란히 섰다. 목소리를 높여 김씨가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우리들의 배를 지켜 주십시오. 뱃길이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비나이다.”최부일행이 사무인

신광재 기자   2007-03-02

수정사 주지 스님은 이번에 경차관을 싣고 나주로 가야할 모든 선원 35명 전부를 불러 들였다. 무사 항해를 위한 해신제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무거운 침묵 속에 발걸음 소리만 가슴을 누른다. "뚜벅 뚜벅."오직 궂은 날씨

신광재 기자   2007-02-23

제주의 배는 대부분 한라산에서 나는 나무를 제목으로 배를 지었다. 한라산 고지대 중턱에서 곧게 자란 상록침엽수인 구상나무가 그것이다. 제주 배는 육지에서 나는 소나무로 만든 배보다 훨씬 단단하고 수명이 길었다. 곧게 자란 구상나무는 배의 속도를 내는데

신광재 기자   2007-02-09

지체 없이 제주로 가야 상주를 보게 된다. 천만 다행으로 다음날 아침 제주 가는 배가 있어서 닷새만에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최부는 먼저 준비해온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상복은 년 동안 입어야할 옷이다. 누구나가 예외 없이 아버지

신광재 기자   2007-02-02

조선의 땅 끝 해남의 관두량에서 출발한 배로 단 이틀만에 조천관에 도착한 최부는 조천 포구의 적막감이 감도는 선창가를 지나 소산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나라님 곁으로 돌아가지?' 포구안쪽 언저리에 줄을 맞춰 묶여있는 작은 어선들이 잔잔한 바

신광재 기자   2007-01-26

조천관의 성벽을 싼 돌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돌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낸 현무암 돌로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삼면은 단단한 돌로 쌓고 바다로 향한 쪽만 터진 모습이다.성안에는 조천관과 주방 그리고 마구간이 있었다. 뒤쪽에는 군기고가

신광재 기자   2007-01-19

더 묘한 것은 새들의 색깔이 잿빛으로 꺼멓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처음본 새를 최부가 알 턱이 없었다. 바다를 모르고 자라온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사수도에만 사는 ‘슴새’는 이곳의 제주사람들은 ‘땅 새’라고 부른다. 슴새는 사수도의

신광재 기자   2007-01-12

선장실로 돌아온 최부는 선장에게 물었다."육지의 끝점 해남의 관두량에서 제주의 조천관까지는 얼마나 떨어졌나요?""970 리인데요, 뱃사람들은 흔히 천리 길이라 생각하고 다닌답니다.""멀기도 하군요.""보통은 사나흘쯤 걸리는 거리인데 오늘처럼 날씨가 좋

신광재 기자   2006-12-29

제주행 배를 기다 린지 어느새 보름이 지나자 제풀에 겨워 공연히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일행은 지친 나머지 할 일 없이 행여나 배가 올까 바다만 바라본다. 그때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물럿거라.""비켜라. 신임목

신광재 기자   2006-12-22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한참을 내려가자 바위들이 보였다. 바위틈에 손을 넣고 기어가듯 겨우 지나갔다. 한발 짝만 잘못 디뎌도 낭떠러지 바다로 떨어지는 곳이다. 정보가 소리쳤다. "서로 손을 잡아라."최부를 가운데 두고 다

신광재 기자   2006-12-15

제주 다니는 배가 날마다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설령 배가 있다하더라도 날씨가 좋아 바람을 타야만 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랫목에 누워있던 만산과 손효자가 동시에 말했다. “저는 꼼짝도 하기가 어렵군요. 제가 방을 지킬 테니 모두 다녀오시지요. 발을

신광재 기자   2006-12-08

하루 종일 이동한 일행은 말을 탄 최부를 중심으로 영산강을 따라 걸어갔다. 지루한 일정이다. 말의 고삐를 잡고 앞서가던 최거이산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경차관님! 저렇게 예쁜 바위산이 높기도 하네요?" "그래, 월출산(月出山)이구나."오후 무렵에야 멀

신광재 기자   2006-11-24

최부는 자신을 수행해서 함께 제주까지 갈 사람들을 모아 금성산을 올랐다. 위험한 뱃길을 나서기 전에 산신제를 드리고 또 일행들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출정식인 샘이다. 금성산의 중실사(中室祠)에 들러 고(告)를 드리고 내려왔다.나주성안으로

신광재 기자   2006-11-17

최부(崔溥)의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고래 등 같은 대궐의 기와집들이 켜켜이 포개져 즐비하다. 최부는 성종대왕을 직접 뵙고 부임인사를 드리러 경복궁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5품의 버슬아치들과는 달리 나라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추쇄경차관(椎刷敬差官)으로

신광재 기자   2006-11-10

청산 윤영근 선생의 영산강 이야기를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연재를 마치고, 선생의「소설 표해록(漂海錄)」을 다음주부터 연재합니다. 소설 표해록은 조선전기의 문신인 최부(崔簿1454∼1504)가 모친상을 당해 제주도에서 귀향하는 도중, 뜻밖에 흑산도

신광재 기자   2006-10-27

섬 지역에 형성된 어촌마다 당집이 있게 마련인데 진리의 당집에는 특별하게도 처녀 당신이 흑산 본당으로 위엄을 부린다. 흑산 본당인 진리 당에는 처녀귀신이 당당하게 군림하는데 처녀 신에 얽힌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옹기를 가득 실은

신광재 기자   2006-10-20

하산 길은 쉬운 듯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유달산이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바위산이라 대부분의 등산로도 바위로 되어 있고, 때문에 그 느낌이 조금은 날카롭고 도전적이기 때문이다. 이등바위 쪽으로 내려가자 헬기장이 보이고 소요정이다. 이곳은 예전에 주민들이

신광재 기자   2006-09-29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산이란 멀리서 보아야 산이 바르게 보인다. 산 속으로 들어가면 산이 보일 리 없다. 빈 가슴으로 산을 보듬어 보자. 내 가슴의 체온이 산에 전달될 때 산이 보이는 것이다. 유달산은 보여주는 곳마다 역사의 흔적이 담

신광재 기자   200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