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실로 돌아온 최부는 선장에게 물었다.

"육지의 끝점 해남의 관두량에서 제주의 조천관까지는 얼마나 떨어졌나요?"
"970 리인데요, 뱃사람들은 흔히 천리 길이라 생각하고 다닌답니다."
"멀기도 하군요."
"보통은 사나흘쯤 걸리는 거리인데 오늘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이틀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롭게 수리한 판옥선은 깨끗하고 날렵해서 잘도 달렸다. 속도가 빠를수록 배 안의 사람들은 심한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 초기부터 잦은 왜침으로 시달림을 받아 왔는데 수군이 본격적으로 정비되고 배를 일정기간이 지날 때마다 수리해가면서 해군력이 조금씩 안전한 자리를 잡아갔다.

판옥선이 활동을 많이 할수록 왜구의 침략이 뜸해 갔지만 남해안에서는 못된 그들의 노략질이 그치지 않았다.

최부는 배 구경에 나섰다. 판옥선은 이층으로 만들어진 나무배다. 한선, 조운선에서 시작한 배는 조금씩 개량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진 배가 판옥선인 것이다.

갑판도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싸움을 해야 하는 전투원과 주로 배를 운항하는 비전투원도 갑판의 아래 부분 뒤에 숨어서 충분히 보호받게 되어 있었다.

전투조는 상갑판의 높은 곳에서 적을 내려다보면서 전투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조선의 수군들이 사용한 무기는 주로 활과 포였다.

특히 활은 왜군이 가장 무서워하는 개인화기였다. 조선인은 활을 잘 쏘았을 뿐만 아니라 정확해서 거의가 백발백중이었다. 조선수군의 활은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적군이 무서워 덜덜 떨었던 활은 화살의 길이가 짧았고 명중률이 높아서 가히 천하무적의 개인무기였던 것이다.

적군이 화살을 주웠다 해도 다시 사용할 수 없는데 이는 화살이 짧았기 때문에 왜군이나 왜구들의 활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의 군인들만 사용하는 '애기 살'이라는 것인데 한번 살에 맞으면 거의 치명적으로 쓰러지고 만다. 화살에 덧대어 쏘는 화살촉은 멀리 날기까지 했다.

보통 화살의 사정거리가 200∼300m정도인데 애기 살은 거의 두 배나 더 날아가기 때문에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궁사들이 몸을 숨기고 시위를 당길 수 있는 곳이 판옥선 2층 갑판이다.

민첩한 기동성이 전투함의 생명이라고 볼 때 노군들은 안전한 곳에서 오로지 노만 저으므로 속도가 빨랐다.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노군들은 노를 젓는대만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판옥선의 구석구석을 둘러본 최부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접근전이 예상되는 격렬한 전투에서는 판옥선의 지붕을 모두 덮은 배가 유리했는데 그것이 유명한 거북선이다.

조선 오백년의 선박사(船舶史)에서 압권은 당연히 거북선으로 판옥선에서 출발한 배가 그것이었던 것이다.

모처럼 배를 탄 일행이 멀미로 고생했을 뿐 배는 무사히 추자도에 도착했다. 선장실로 찾아간 목사가 말했다.

"내일은 가급적 아침 일찍 출발하도록 합시다. 초행길이라 훤할 때 도착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럼은요. 내일 오후쯤이면 조천관에 이를 것입니다."

갈매기라면 높이 나를 탠데

추자도에서 하룻밤을 새운 배는 제주도로 향했다. 배 멀미에 많이 시달린 김중과 손효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멀쩡했다.

한참을 지나자 배는 어느새 바다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디를 보아도 푸른 바다뿐이다. 배의 왼쪽 동편에서는 둥근 해가 머리를 내민다.

일출의 장관이었다. 물 속에서 뽀도시 내미는 붉은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배에서 본 일출은 가슴을 울렁이게 하며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직선으로 곧게 그은 수평선 위로 서서히 느리고 점잔 하게 올라서는 태양이 잔잔한 수면을 헤치며 온몸을 밀어내며 솟아오른다.

일출 중에 가장 보기가 좋아 장엄하다는 오메가 일출의 명 장면인 것이다. 모든 생명이 있게 해주는 거룩한 태양이 있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날마다 대하며 보아온 해이지만 바다 속에서 솟아나는 태양이 이렇게 장엄할 줄이야! 목사와 경차관이 질러대는 감탄사가 동시에 터졌다.
 
"와-아, 저렇게 붉다니!"

잔잔한 수면위에 절반쯤 걸려있던 태양은 어느 샌가 수면에서 떨어져 있었다. 잠깐 사이에 올라가는 느낌이다. 만물의 근원인 태양은 오늘하루를 이렇게 시작한다.

순풍을 만난 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배의 서쪽으로 까만 점처럼 보이는 작은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장은 사십대 초반의 노련한 뱃사람으로 일대의 뱃길을 손금 보듯 훤하게 알고 있는 자였다. 최부는 선장실로 들어갔다.

"선장님! 저기 왼편에 보이는 까만 것이 무엇입니까?"
"사수도인데요."

사수도는 추자도와 제주도의 중간쯤의 거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추자도에서 대략 2km 쯤 떨어진 바위로 된 암초덩어리 섬인 것이다.

사수도는 해안선이 온통 암벽으로 이루어진 섬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어려워 지금껏 무인도이기에 많은 새들이 주인처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섬 구경에 빠진 일행은 그저 멍하니 바다만 바라본다. 배가 지나가면서 섬의 모습은 더 뚜렷하게 보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구름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섬은 보는 이들의 심정을 찹찹하게 한다.

판옥선이 섬을 멀리 돌아설 무렵 알단의 새들이 무리를 지어 바다수면 가까이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새들이 덩어리로 떼를 지어 날면서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은 하늘을 덮었다 풀었다 하면서 난다. 천여마리가 떼를 지어 물 속을 주시하며 자맥질을 계속한다. 최부는 생각했다.
 
'이상하다. 갈매기라면 높이 나를 탠데….'

-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