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사이에 먼저 선장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사무장! 오늘 바람의 세기가 이렇게 변덕스러운 것이 수상쩍네. 구름과 눈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는 폼이 큰 바다로 나가면 험악한 파도를 만날 듯 두려운 생각이 드네."

"선장님, 한라산뒤쪽에서 회용돌이 치며 불어오는 바람이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이럴 때는 어김없이 태풍이 몰아치는데 걱정이네요."

총무 안의는 반대의 의견을 토했다.
 
"제주의 정월기후를 누가 감히 똑바로 예측하겠습니까? 먹구름이 걷히고 나면 온 하늘이 열리면서 순풍이 불 것으로 믿습니다."
 
그는 나라님의 덕이 지극해서 오늘의 항해가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로는 공무를 진행하던 배는 뒤집혀 넘어진 적이 없다고 하면서 임금의 후광을 믿었다.

여태까지 제주 앞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배는 모두 사선(私船)들이었지 왕명을 받드는 배는 그런 예가 없다면서 선원들을 안심시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5년 전 정의현감이었던 이섬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현감이 교체되는 바람에 한양으로 돌아가던 그는 바다 속에서 행방불명되고 말았던 사건이다. 이 섬은 그를 따르던 47명과 함께 제주도를 떠나 항해도중 추자도 10리 남짓 못 미쳐 동북풍을 만났다.
 
무섭게 불어 치는 태풍을 피하지 못해 장장 10일 동안 표류했던 난파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때나 오늘의 계절이 비슷해서 일견 두렵기도 하고 무서움이 앞선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곳은 중국 양주(楊洲)땅 장사진에 표착해서 살아났다.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건진 그들은 한양으로 돌아왔다. 다음해 조선의 천추사와 동행해서 북경을 경유하여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 일행이 양주에 이르렀을 때는 표류 중 무려 14명이나 죽고 말았다. 망망대해 속에서 작은 나뭇잎처럼 떠다니던 난파선에서 먹을 것이 떨어져 굶어 죽은 사람들이 태반이었다고 한다.
 
다행이 이 섬은 살아났으며 무관이었던 그는 두 계급 특진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난파선에서 서로 힘을 합해 어려움을 이긴 결과였다. 위기를 이겨낸 용기를 가상히 여긴 임금님의 각별한 배려로 특별승진까지 했던 것이다.
 
총무는 큰소리로 외쳤다.
 
"항해를 계속하라. 임금님의 은덕이 많아 이 배는 무사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온 배인데 어찌 떠났던 길을 다시 돌아간단 말인가? 지체할 것 없이 계속 가도록 하자."
 
돛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총무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서려있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배는 빠르게 바다를 가른다.

추자도에 정박하지 못하고 추란도로

  오후가 지날 무렵 배는 추자도를 절반쯤 왔다. 일단 추자도(楸子島)까지만 가도 안심이다. 추자도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뭍으로 가던 배들이 잠시 쉬면서 식수도 싣고 식량도 보급 받을 수 있는 항구이기 때문이다.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은 추자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추자도로 불리어온 섬이다. 추자도는 제주를 왕래하는 해로의 중간지점에 있는 작은 섬이다. 넓은 바다에서 작은 어선들의 모항이 되어주기도 한 섬이다.
 
배가 대화탈도(大火脫島) 곁을 지나가자 뱃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후면 추자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심이다. 추자도로 들어가자."
 
 수정호의 속도가 빠르다 했더니 선장이 키를 잡고 직접 항해를 이끈다. 단숨에 수덕도(愁德島)를 왼쪽으로 지나갔다. 겉잡을 수 없는 바람이 몰아치자 배가 잠시 방향을 잃은 듯 하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가며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침 늦게 출항해서 아직 추자도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주변이 컴컴해지고 매서운 바람과 함께 차갑고 얼음같은 비까지 내린다. 이런 와중에 배는 다행이 추자도 입구까지 들어왔다.

  이때였다. 바람이 잠깐 조용해진 틈을 타 배의 속도가 죽더니 서서히 정지할 무렵 빠른 조수에 의해 배가 방향을 벗어나 밀리는 게 아닌가!

  "키를 잡아라! 키를…."
  "키를 붙잡아도 필요가 없는데요."

  조수에 밀리는 배를 보고 다급해진 선장의 찢어질 듯한 고함이 있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초공(梢工) 김고면이 발악하듯 악착스럽게 키를 붙들었다. 손바닥이 벗겨지며 기운대로 잡았지만 허사였다. 너무 빠른 조수로 떠밀리던 배는 추자도로 들어가야 할 괘도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닻을 내리고 노꾼들을 독려해서 배의 진로를 바꾸려했지만 한번 떠밀린 배는 조수 따라 흘러가는 통에 괘도수정이 불가능했다. 결국 추자도에 대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선장은 호루라기를 불며 배를 인근에 있는 초란도(草蘭島)로 몰았다. 배안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웅성거린다. 일부는 무서워 덜덜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초란도에는 배를 댈 수 있었다. 선장의 발 빠른 대처덕분이었다. 수정호의 선미에 매달려 있어야할 거룻배가 보이지 않았다. 거룻배에는 물동이를 4개나 실었는데 배마저 없어졌으니 마실 물은 말할 것도 없고 밥해먹을 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