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한참을 내려가자 바위들이 보였다. 바위틈에 손을 넣고 기어가듯 겨우 지나갔다.

한발 짝만 잘못 디뎌도 낭떠러지 바다로 떨어지는 곳이다. 정보가 소리쳤다.
 
"서로 손을 잡아라."

최부를 가운데 두고 다섯 사람이 함께 엉키듯 손을 붙잡았다. 슬슬 기듯이 능선으로 올라서자 엎어지면 코가 닿을 듯한 곳에 진도가 보인다.

진도는 보배의 섬으로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물론 유배지로 쓰이던 섬이기도 하다.

능선 길은 조금씩 내려가는 내리막길이다. 팔부 능선쯤에 내려왔을 때였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걸어가던 다섯 사람 모두가 너무 놀라 걸음을 멈췄다. 바위틈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이 멋이여?" 
"산불이 났을까?"

바위들이 얽혀있는 틈새로 뿜어 나오는 하얀 김이 이상하기만 했다. 산의 정상에서 모락모락 일어난 연기가 증기처럼 뿜어져 나온다.

해진성관의 사람들은 아무리 추운 혹한에도 20여도의 더운 바람을 쏟아내고 있는 구멍이라서 풍혈(風穴)이라 한다.

더운 바람이 나오는 바닥에는 용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하며 신성시하고 '용굴'이라고도 한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포개진 사이로 더운 김이 나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풍혈 근처의 풀이 추운 겨울 날씨인데도 아직까지 파란 모습이며 커다란 바위에 붙은 이끼의 색깔도 싱싱하고 파란 녹색을 띠고 있었다.

최부 일행은 겨울날씨 답지 않은 진풍경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접근했다.

풍혈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산재해 있었다. 가운데의 굴이 가장 넓었다. 3, 4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입구가 컸다.

관두마을 사람들이 용굴이라고 할만했다. 산의 이곳저곳에 땅이 움푹 들어가고 무너진 곳도 있었다.
 
"화산이 터진 분화구가 아닐까?"
"그렇기로서니 저럴 수가!"
"연길까? 수증길까?"
"알 수가 없구먼."

최부와 정보, 김중이 제일 많은 김이 나오는 굴로 동시에 들어갔다. 굴속은 따뜻한 김이 나오며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더웠다. 장작화로 옆에 있는 듯했다.

"누구 한사람 더 들어오게나."

풍혈 속에 대고 소리를 질러 보았다. 메아리치며 들려오는 소리가 용(龍)의 함성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호기심 많은 손효자가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바위 틈새를 들여다보아도 보이는 것이 따로 없었다.

어찌 보면 아주 오래 전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휴식을 취하는 휴화산 활동이 가늘게 이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현상은 표면적으로 땅속 동굴의 지열이 차가운 바깥 공기 중으로 나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관두산의 풍혈은 일년 내내 18도 정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찬 날씨에는 수증기가 확연하게 보여 더 뚜렷이 알게 해준다.

단층면과 쪼개진 돌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고 지하에서 올라온 뜨거운 열원에 의하여 덮여지고 수증기로 변해서 밖으로 나온다. 더운 수증기는 응회암의 엇갈린 틈으로 상승하면서 더운 바람이 부는 것처럼 보여 진다.

이러한 수증기의 영향으로 동굴내부의 습도는 100%유지되고 외부온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사계절 똑같은 더운 바람이 나온다고 한다. 행여나 뜨거운 온천이라도 펑펑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곳 동네사람들은 틈새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기 때문에 풍혈이라 부르지만 아직까지도 뚜렷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없는 샘이다.

풍혈에서 지하로 100m만 파내려 간다면 바닥심부의 온도는 지역이나 지질의 성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란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점이다.

행운의 온천수가 쏟아 질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부풀게 한다.

땅 끝에 머물러 있는 최부일행

멀리 보이는 제주 가는 바다가 파란색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칠 때는 하얀 거품을 일으킨다. 아직까지 땅 끝에 머물러 있는 최부 일행은 수심 어린 걱정이 태산이다.

산 구경한다는 것이 오히려 미스터리에 쌓이며 답답증만 부추긴 샘이 되고 말았다.

산의 중턱 절벽에서는 지층이 뒤틀리고 물결모양으로 휘어지며 뒤엉킨 곳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관두산 일대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던 곳으로 화산폭발이나 지각변동에 의해 퇴적암층의 절리현상이 생기면서 단열팽창에 의해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보여 지지만 이것은 오로지 추측일 뿐이다.
 
"이제 서서히 내려가도록 하자."

올라왔던 능선 길을 마다하고 반대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풍혈이 있는 곳에서 조금 내려오자 크고 작은 돌들을 모아둔 돌무더기가 서너 개나 보였다.

작은 산인 관두산의 어디서 가져온 돌일까?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십여 분쯤 내려간 고갯마루쯤에 바위틈에서 물길이 뚝뚝 떨어지는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마치 지붕의 처마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바위틈에서 떨어진 물이 고여 작은 옹달샘을 이루는 곳이다. 누군가 떠먹었을 물바가지가 있었다.

먼저 최부가 물맛을 보았다. 바가지로 휘-위 저은 다음 마신 물맛이 그만이었다.
 
"와- 감칠맛이 난다. 시원하다."
"벌컥 벌컥."

모두가 물맛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앞으로 불끈 튀어나온 바위틈에서 한 방울씩 떨어진 석간수가 모여 샘을 이루고 있으며 비바람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진짜 샘은 이곳 너럭바위 바로 옆에 있는 샘으로 이 샘은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고 똑같은 수위를 유지하며 맑다고 한다.

산의 정상부근에 그것도 산세가 그다지 크지도 않는 곳에 이런 샘이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해진성관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