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산이란 멀리서 보아야 산이 바르게 보인다. 산 속으로 들어가면 산이 보일 리 없다. 빈 가슴으로 산을 보듬어 보자. 내 가슴의 체온이 산에 전달될 때 산이 보이는 것이다.

유달산은 보여주는 곳마다 역사의 흔적이 담겨진 산이다. 예향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주는 문화유산이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거리는 산이 유달산이다. 목포시민과 함께 영욕의 세월을 지켜온 영산인 것이다.

한참을 오르자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반반한 바위틈새에 자리한 오포대(지방문화재 138호)가 옛 모습 그대로다. 금방이라도 화약 냄새를 풍기며 거친 소리를 토해낼 듯한 자세다.

‘펑-펑-펑‘
오포란 정오포의 준말로 구한말과 일제침략기에 포를 쏘아 정오(낮12시 정각)를 알리는 신호를 말한다. 이곳의 오포는 경기도 광주에서 옮겨온 포를 사용해 왔는데 일본에 의해 징발당하고 말았다.

그 후부터는 싸이렌 소리로 정오를 알렸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오포 분다고 했다. 그래서 천자총통으로 유서 깊은 오포를 복원하고 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목포의 진산 유달산!
기암절벽이 아슬아슬하고 첩첩하여 호남의 개골산으로 부르며 금강산의 바위들을 옮겨왔다고 할 만큼 재자랑에 취한 바위들이 다도해를 굽어본다.

유달산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바위로 된 산이어서 위험하고 경사가 급해 주의를 기울려 산행에 임해야 한다. 천만다행으로 포개진 바위들이 모가 나지 않고 반들반들하며 모서리의 선이 부드러워 친근감이 있어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기자기한 산이다.

오포대 옆에 있는 넓은 바위에 걸터앉아 멀리 보이는 영산강이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하구언 둑으로 인하여 호수로 변해 버린지 오래되었다. 강물 속에는 삼호 공단으로 뻗어갈 철길 교각이 줄지어 서있다.

멀리 보이는 월출산의 천황봉(809m)이 구름에 가렸지만 흰색으로 빛나는 바위가 찬란한 보석 같다. 더 멀리 영산강물위에서는 뿌연 물안개가 수증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흰색인 듯 회색인 물안개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영산강이 보여주는 한 폭의 진경산수화다.

산중턱엔 '목포의 눈물' 노래비

조금씩 오르기를 계속하자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위로 갈수록 점점 크게 들려오는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었다. 산중턱에 자리한 노래비는 1930년대 가수 이난영이 불러 선풍적이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었다.

목포의 눈물은 목포시민의 노래이자 한국의 대표곡이다. 목포를 상징하며 가슴속에 자리한 보석과 같은 노래다. 남쪽하늘아래 여기 유달산의 양지쪽에 꿈과 사랑의 씨앗을 뿌린 가수 이난영은 당시 우리시대가 안고 있던 식민치하의 서러움을 노래로 담아냈다.

모든 이에게 애창되던 노래로 이난영을 가요계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한다. 노래비 앞에서니 육지가 되어버린 새 개의 섬, 삼학도와 그림 같은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이난영은 이미 없지만 지금 그녀의 노래비가 남아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게 해 준다. 해마다 열리는 난영가요제는 한국대중가요계의 트로트 음악의 맥을 잇는 행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제 목포는 한과 설움에서 벗어나 패기와 찬양과 환희로 거듭나야한다. 유달산아 말해다오 목포의 미래를. 서남해안시대의 기본축의 도시로 세계를 향해 활짝 열어제치고 항구로 그리고 거대한 중국대륙과 무진장한 자원을 품고 있는 시베리아의 현관으로 번영의 그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 속으로 흘러든다. 조금은 따끈 거린다. 참고 견디며 천천히 오르자 팔작지붕에 한옥기와를 올린 유선각의 둥근기둥10개가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다.

유선각 현판은 해공 신익희 선생의 글씨다.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외치면서 대통령선거전에 뛰어든 그는 유세도중 호남선 열차 속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정치가였다. 그래서 비 내리는 호남선이라는 슬픈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유선각 입구에는 이곳 출신의 예총회장 차범석의 글이 입구에 써있었다. 흰 구름도 쉬어 가는 곳으로 세 마리의 학이 고이 잠든 푸른 바다의 속삭임을 새벽 별과 함께 귀 기울이며 들어보고 싶어하는 심정으로 유선각을 찬미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햇빛에 빛나는 바다위로 유유히 지나가는 배가 내려다보여 한 폭의 그림이다.

무릉도원속 고하도 절경

발아래 유달산이 끝나는 곳에는 푸른 파도가 밀려와 하얀 거품으로 부디 치는 곳이 유달 해수욕장으로 텅 빈 모래사장이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 유람선 선착장에는 유람선 마리너호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먼 곳으로 유람을 떠났다.

긴 고구마처럼 길게 뻗어 내린 고하도가 남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부디 치며 부대끼고 있다. 목포 팔경 중 용당귀범이란 돛단배가 고하도 끝 용머리 앞을 돌아오는 풍경을 일컫는 말인데 당은 고하도를 말하고 지형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섬이라하여 용머리 용당이라 한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고하도의 풍경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더구나 푸른 호수로 비견되는 다도해를 뒤로하고 용머리 앞을 돌아오는 돛단배의 풍경이 어우러진다면 그야말로 무릉도원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절경이라 하겠다. 길게 뻗어 내린 고하도가 남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부디 치며 이겨내고 있었다.

유달산 일주도로를 서쪽으로 돌면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유달산의 뒤편자락에 어민동산이 자리했다. 노를 젓는 어부의 양팔에는 기운이 넘치고 키를 넘는 집 채 만한 파도가 어민의 기상과 같다. 화강암으로 빚어낸 어민상은 생명력 넘치는 활기찬 모습이다.

이곳은 바다와 더불어 살다간 어부들의 망혼을 위로하고 해양을 개척해 나가는 어업인의 기상을 기리는 동시에 어민들의 사명감고취와 찾아오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기위해서 만들었다.

김지하 시인이 쓴 ‘바다’의 시가 새겨진 돛단배가 바람만 분다면 돛을 올리고바다로 갈 채비를 갖췄다. 시인의 시(詩)에서는 용기가 팽만한 힘이 넘치고 패기가 흐른다. 공연히 흥분된 마음이 붉은 피를 끓게 한다.

갓바위 쪽의 해양박물관이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이고

흐르는 땀을 식히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올라간 넓적하고 반반한 마당바위에는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은 만큼 넓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등바위를 향한 길옆에는 온갖 기묘한 현태의 바위들이 폼을 잡고 맵시를 뽐낸다.

가파르고 힘든 코스에는 어김없이 안전난간이나 밧줄이 묶여 있어서 철책을 붙잡고 올라갈 수 있게 했다. 능선 따라 멋대로 자리한 암봉! 천관산의 구슬바위를 옮겨온 듯한 신비한 모습이 전신을 마비시킨다. 유달산을 금강산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도처에 자리한 각각의 암봉들은 보여주는 모습과 느낌이 다르고 기기묘묘한 수석전시장 같다.

길바닥이 바위로 된 곳은 돌을 쪼아 계단을 만들어 쉽게 오를 수 있게 했다. 오르는 길에서 내려와 왼편으로 돌아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올라가자 유달산의 최정상(해발228m)일등바위다. 영혼이 심판 받는다 하여 이름지어진 일등바위! 사방으로 터진 시야가 가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유달산의 북쪽 끝자락을 압해도와 연결하는 높다란 교각이 바다 가운데에 한 줄로 반듯하게 서있다. 신안 바다의 다도해에 떠있는 수많은 섬들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 작은 섬들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흰 띠를 두른 듯 하고 고하도 옆으로 돌아가는 쾌속선이 그어대는 물줄기가 반듯했지만 어느 순간 슬그머니 흔적을 지워버린다.

많고 많은 섬들로 인해 이곳이 다도해임을 증명해 주며 진정여기가 섬들의 못자리임이 분명하다.

무안 쪽의 승달산은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구름과 황사 때문이다. 월출산은 갑자기 솟아오른 듯 독특한 모습의 천황봉(809m)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톱날처럼 암봉으로 이어진 능선 따라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양의 월출산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바다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갓바위 쪽의 해양박물관이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호남선의 종착점인 목포 역 일대가 회색인 듯 까만 잿빛으로 보인다. 정상의 바람은 매섭게 차가운 칼바람이다.

가쁜 숨소리와 함께 땀에 젖은 온몸을 말려주는가 했더니 어느새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해풍에 몸이 떠밀려 갈듯하다. 남태평양의 큰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조개구름처럼 흰 양떼처럼 오는 듯 가는 듯 넘실댄다.

노적봉을 지나 일등 봉에서는 푸른 듯 검은 앞 바다를 찬찬히 들여다 볼일이다. 조용한 서해바다는 그리움으로 더 깊어가고 일등바위 정상에 꼿꼿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바위산 틈새에서 힘들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의 뒤척이며 질러대는 외침을 귀담아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바다에서 들려오는 함성에서 그윽한 애정을 맛보아야 한다.

나주 중앙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