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다니는 배가 날마다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설령 배가 있다하더라도 날씨가 좋아 바람을 타야만 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랫목에 누워있던 만산과 손효자가 동시에 말했다.
 
“저는 꼼짝도 하기가 어렵군요. 제가 방을 지킬 테니 모두 다녀오시지요. 발을 좀 다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둘이서 구들장을 들쳐 메고 있을 랍니다.”
 
결국 다섯 사람이 산 구경을 나섰다. 이정과 정보가 앞장서고 최부 옆으로 김중과 최거이산이 뒤따랐다.

산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일행은 한눈에 들어오는 관두량 포구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버렸다.
 
“와-아, 항구가 바가지처럼 움푹 들어간 모습이 둥근 공이다.”
“아무리 태풍이 불더라도 항구 안에서는 끄떡없겠다!”
 
천혜의 항구는 눈이 부실정도로 예쁘고 황홀하게 보였다. 해진성관의 검은 기와지붕이 길게 뻗었다. 진관에 딸린 커다란 창고도 보였다.

간간이 들락거리는 작은 어선들의 돛배가 풍선처럼 배를 불리기도 하고 닻을 내린 배들은 선창의 돌기둥에 두꺼운 밧줄로 몸을 묶었다.
 
이미 없어져 버린 산길을 만들면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더디기만 했다. 가끔은 발목을 쑤시는 가시넝쿨이 힘들게 한다.

어느 틈에 붙었는지 도깨비바늘이 종아리를 파고든다.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 최부는 선두에 선 사람들을 불렀다.
 
“천천히 갑시다.”
“빨리 빨리 오세요.”
 
관두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바다를 외워 싸듯 뻗어 내린 능선이 바다 속으로 길게 들어가 제법 길기도 하다.
 
진관의 바로 뒤쪽 봉이 가장 높았다. 오늘날의 헬기장이 자리한 봉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고 한다.

멀리 서남해의 왜구들이 넘나드는 것을 조망하여 한양 쪽으로 봉화를 중계했던 곳으로 군사요충지이자 남해바다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정상(해발 162m)이 오뚝하고 산 전체가 바다 속으로 몸통을 밀어낸 형국이라서 먼 곳까지 불이 보이는 위치를 점했다.

바다 전체가 조망되는 자리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곳에 봉화대를 세운 것이다.

군사요충지였던 관두산 봉수

관두산 봉수는 조선 세종 때 조성된 것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으로 남아 한반도의 땅 끝 갈두산과 서쪽으로 진도의 첨찰산에 응했다고 되어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멋이 넘쳤다. 제법 쌀쌀한 겨울 날씨인데도 하얗게 일렁이는 파도가 남쪽 태평양에서 실어온 기운을 쏟아 붓는다.
 
산 아래의 작은 섬은 상마도이고 멀리 보이는 시커먼 산이 진도(珍島)다. 포구 안은 물결이 잔잔하다. 포구의 모래사장은 하얀 외광 목을 널어 둔 것처럼 하얗다.
 
왼편으로 보이는 완도(莞島)가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린다. 넓은 바다가 제주까지 펼쳐졌다.

한라산(해발 1915m)의 꼭대기가 아물거리며 보인다는 곳인데 오늘은 불순한 날씨와 해무로 인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바다구경에 정신이 빠진 일행은 가야할 제주를 그리며 흐르는 땀을 식혔다. 멀리 보이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섬들이 노둣돌처럼 띄엄띄엄 놓여있다.

손을 길게 뻗으면 여러 개의 섬들이 품안으로 모여들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이 정겹게 보인다.
 
최부 일행은 관두산의 능선을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비록 산을 둘러보며 구경하지만 언제 제주 가는 배가 나타날지 알 수 없으므로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수다를 떨며 걷기 시작했다.

반도의 끝과 진도 사이에는 좁은 해협의 바다가 흐른다. 그리고 멀리 가야할 제주가 조선의 끝을 지키고 있는 편이다.
 
제주도는 육지의 땅 끝 해남반도와 하나의 바다로 연결되어 있는 샘이다. 바다만 건너면 제주였다. 바다를 건너야하는 것이 공연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최부는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가보는 제주도가 멀게만 느껴진다. 오늘까지 벌써 열흘이 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 배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 바람이 맞아야 배가 뜬다고 하니 일기가 협조를 해줘야만 제주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9월17일에 임금님에게 하직인사를 했는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최부의 가슴속을 누가 알랴?
 
‘이래서는 안 되는데….’
 
비록 산을 걷고 있지만 최부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배가 없어서 애가 타는 최부의 타들어 가는 가슴을 벌써 알아차린 바다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울어댄다.
 
“끼-륵 끼-륵”
 
오래 전부터 육지와 제주사이에는 가슴에 쌓인 동경과 그리움에 사무친 동경심이 널려있다. 일행의 마음이 지루하고 답답해서 타들어 간다.

큰 호수와 같은 바다 건너 진도가 코앞에 내려다보인다. 해남의 서남쪽 바다 속으로 불쑥 내민 곳이 관두산이고 산이 활처럼 등이 굽고 움푹 들어간 곳에 관두량이 있다.

오늘날의 해남화산의 관동마을이 그곳이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