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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 표해록-1.목숨 건 표해(漂海)(8)최부 제주에 첫발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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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승인 2007.01.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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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묘한 것은 새들의 색깔이 잿빛으로 꺼멓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처음본 새를 최부가 알 턱이 없었다.

바다를 모르고 자라온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사수도에만 사는 ‘슴새’는 이곳의 제주사람들은 ‘땅 새’라고 부른다.
 
슴새는 사수도의 언덕바지의 양지바른 곳에 땅굴을 파고 그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치는 독특한 새다.

대부분의 새들이 나무 가지에 집을 짓고 사는데 비해 땅속에 굴을 파고 산다니 묘한 습성이다.
 
“무슨 새라고요?”
 
최부의 물음에 선장이 대답했다.
 
“슴새인데 이곳 사람들은 땅 새라고 한답니다.”
“물에는 물새, 땅에는 땅 새 군요.”
 
사수도의 언덕바지 잡초사이의 땅을 파고 굴을 만들어 살기 때문에 땅 새라고 한다. 털의 색깔도 까맣고 독특한 습성의 새로 오직 사수도에서만 사는 새이다.
 
먹이 사냥을 할 때는 수면에 가깝게 붙어 집단으로 날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오늘날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는 종이다.
 
사수도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 문제의 섬이 되고 말았다. 당시에는 전라도였지만 지금은 제주도와 전라남도가 분리되면서 양쪽에서 서로 자기네 관할의 섬이라고 우기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전남의 완도에서는 먼저 등기소에 보전등기를 신청했고 뒤늦게 제주도의 추자도에서도 자기들의 관할 섬이라고 나서고 있다. 지역 이기주의의 대립은 없어야 할 것이다.
 
판옥선은 제주와 추자의 중간지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어설프게나마 한라산(해발 1950m)의 꼭대기가 하얀 눈을 뒤집어썼는지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한다.

한라산은 남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도 넓은 바다 속에서 드러낸 모습은 예쁜 아가씨의 오뚝한 코처럼 솟아올랐다. 정상을 중심으로 기다란 삿갓의 가운데만 유별나게 높은 것처럼 보인다.
 
한라산이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제주 앞 바다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푸른 바다가 너무 파래서 시커멓게 보였다. 그만큼 바다 물이 깨끗하고 오염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경차관님! 저기보이는 높게 솟은 암석덩어리가 관탈도랍니다.”
“섬 이름이 재미있군요.”
 
관탈도는 제주에서 유배사리를 했던 많은 선비들이 섬을 떠나면서 북쪽의 나라님을 그리면서 쓰고 있던 사모관대를 벗어들고 예를 갖추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로 오는 자나 제주를 떠나는 이들이 한번쯤은 반드시 경유해야하는 곳에 자리한 관탈도는 제주의 상징물처럼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섬이었던 것이다.
 
섬이 가까워지자 배안의 사람들이 뱃전으로 모여들었다. 낯선 제주를 보느라 이국적인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선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소란을 떠는 사이에 배는 어느새 포구 안으로 들어선다. 조천관의 기다란 방파제가 입구 쪽을 살짝 오므렸다. 포주박속 같은 항구 안이 천혜의 요새다.
 
배가 제주에 닿을 즈음 갑자기 날씨가 흐렸다. 사방이 터진 제주에서 바람은 도대체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매서운 바람이 움츠려들게 한다.

사방팔방으로 터진 바다 속의 섬이라 유난히 바람이 거칠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었다. 흩어지는 옷소매를 수시로 훔치며 휘날리지 않게 해야 한다.
 
최부가 제주에 발을 처음으로 내려놓는 때가 1487년(성종 18년) 11월 30일이다. 이날은 유난히 날씨까지 흐렸다.

거친 파도가 밀려와도 포구 속으로 일단 들어가면 안심이 된다. 항아리 속처럼 움푹 들어간 조천포구에는 세곡선과 낡은 한선이 있고 수군들이 훈련받던 여러 척의 배들이 매어져 있었다.
 
목사와 최부일행이 타고 왔던 판옥선이 포구 안에서는 단연 돋보이고 크게 보여 위엄이 넘쳤다. 조곡선이 입 출입하던 조천관은 한가했다. 신임 목사를 선두로 최부도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신임목사, 경차관 만세!”
“제주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낯선 제주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신관 목사와 젊은 경차관이 온다는 연락을 미리 받은 제주관아 사람 대부분이 선창에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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