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에 관한 것이라면 한 번만 들어도 시시콜콜한 것까지 깊이 기억하지만, 공부는 밤샘을 해도 막상 다음날 시험지를 대하기만 하면 어젯밤에 도대체 뭘 했는지 아득하기만 한 상황, 많이들 경험하셨을 것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현상을 분석하자면, 아마 집중력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말에도 그런 게 있다. 항상 헷갈리는 말이 헷갈린다. 그래서 말과 글로 밥 먹고사는 사람들마저도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기억이 아득한 낱말 몇 개, 쓸 때마다 다시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단어 몇 개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헷갈리는 건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눈살'이란 말을 보자. 이 말을 쓸 때마다 '눈살을 찌푸린다'인지, '눈쌀을 찌푸린다'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많지만, 한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깨끗이 해결할 수 있다.

이 말은 못마땅해서 두 눈썹 사이, 즉 양미간을 찡그릴 때 쓰는 말인데, 사람의 양미간에 있는 것이라면 '살'이지 거기에 웬 '쌀'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경상도 사람이라면 '쌀'이라는 발음조차 어려울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눈살' 아닌 '눈쌀'로 헷갈릴 까닭이 없다.

헷갈리기 쉬운 비슷한 말로 '등살'과 '등쌀'도 있는데 이 둘도 뜻을 분명히 알면 헷갈릴 일이 없다. 즉 '등살'은 말 그대로 '등에 있는 살(근육)'일 뿐이다. 그래서 '등살이 꼿꼿하다'처럼 쓴다. 반면 '등쌀'은 '몹시 귀찮게 구는 짓'을 가리킨다. 그래서 '등쌀에 시달린다'처럼 쓴다.

손자가 할머니에게 과자 사달라고 떼를 쓰는 일은, 비록 '할머니의 등살'에 매달려서 하더라도 '등쌀'이라고 해야 한다. 뭐, 할머니야 전혀 등쌀로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