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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금남동 5통 경현동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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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호] 승인 2024.04.14  19: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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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제물레길 따라 벚꽃 명소로 액맥이굿 전통 이어오는 마을

신라시대 창건 다보사 보물과 국립숲체원·인공폭포 둥 관광객 발길 이어져
당산나무 주변 물길의 물레방앗간과 우물·빨래터에 사람들 어울리던 기억

   
▲ 경현동 사람들이 마을회관 앞 운동기구를 이용하고 있다.
 
“산중에서 키운 것이라 김치를 담그면 익어도 물러지지 않는다” 금남동 5통 경현동 김옥주(78세) 씨는 “우리 마을 열무가 세상 어디다 내놔도 젤 맛났는디,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자취를 감춰 아쉽다”며 “금성산에서 나무를 해서 장작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장흥군이 고향인 김 씨의 3남매 중 둘째 아들은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이이수(55세) 한양대 특임교수다.
 
제1기 육군기술사관으로 임관해 보급장교로 20여년 군생활을 한 이권범(69세) 씨는 “소령으로 예편한 뒤 입사한 식품회사에서 군생활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며 “정년퇴직을 앞두고 더 일하자는 회사의 권유가 있었지만, 혼자 계신 어머니를 ‘100세까지 10년은 내 손으로 모셔야겠다’ 마음 먹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작년에 100세를 1년반 남기고 돌아가신 게 아쉽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세끼 식사를 해 드린 게 다소 위안이 된다”는 이 씨의 정성스런 효행이 널리 알려져 나주시장으로부터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 이 씨는 금남동 새마을협의회장으로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잠사공장에서 10년 일하고 LG화학에서 선물세트 포장하는 등 도합 26년을 직장생활해서 3형제를 키웠다”는 승육숙(81세) 씨는 “토계리에서 신혼생활하던 2~3년을 빼고 평생을 탯자리에서 살고 있다”며 “초등학교 3학년 때 한수제 둑이 생기기 전 논을 가로질러 시내로 다니던 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영광군 법성포가 고향인 곽화영(68세) 씨는 4년 전에 경현동 사람이 됐다. “내 손을 보시오. 배밭에서 일한 게 17년이고, 곡성군이며 전라북도 고창군까지 다니면서 고구마 캐고 양파 심고 미나리 작업하며 평생 ‘들일’만 했소”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곽 씨는 “경기도 안산·부천시에서 살다 27년 전 막내 고모가 사는 나주로 와서 교동과 송월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양념 안 사먹는 것만 해도 어디여?”라며 밭에 거름을 뿌리는 이옥순(72세) 씨는 “기계없이 손으로 농사짓는 게 힘들긴 하지만 내 손으로 기른 마늘, 양파, 고추, 깨, 상추가 자식들 입으로 들어간다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한다. 강원도 영월군이 고향인 이 씨는 정선군 우체국에서 근무하다 군생활 중인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 한수제를 둘러싸고 펼쳐진 벚꽃길은 나주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다.
 
“벌교역에서 내리자마자 마을마다 돌며 고흥에서 완도까지 서너달씩 지신밟기를 하러 다녔다”는 박영환(78세) 씨는 “우리 마을 풍물패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가는 집마다 환대를 받고 마을마다 잔치를 벌였다”며 “그 인기가 얼마나 좋았으면 서로 사위 삼겠다고 나서고 실제로 고흥군 처녀랑 결혼한 사촌도 있다”고 자랑이 멈추지 않는다. 
 
“큰아이가 초등 5학년·막둥이 4살 때 혼자 돼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함평군에 와서 산에서 나무 솎고 식당 일해서 4남매를 키웠다”는 유애자(87세) 씨는 “아버지 없이 키웠다는 말 안 들으려고 과일나무나 음식점에 눈길도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며 “작은 딸이 경현유원지에서 식당을 시작할 때 이사 와 20여년이 지났다”고 한다.
 
경현동에 20여곳 닭요리집이 번성하던 40여년 전 과원동에서 이사왔다는 홍영숙(83세) 씨는 “생닭을 잡아 식당에 공급하던 첫 해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에 300마리를 잡았다”며 “100마리 넘게 파는 집도 있었는데, 지금은 10마리 팔기도 어렵다”고 한다. 다시면 영동리가 고향인 홍 씨는 “자식들 대학까지 보내느라 평생을 일만 다 했는데, 이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친구가 음식점을 연다고 해서 도와주러 왔다 눌러 앉았다”는 송월동 출신 김민현(58세) 씨는 “가락동에서 해산물을 팔기도 하고 횟집을 열었다 실패도 맛보며 20여년을 요리사로 서울서 살았다”며 “우연히 지인 소개로 ‘경현포차’를 넘겨받고 지금의 ‘경현마을’로 자리잡은 지 16년째”라고 한다. 김 씨의 ‘경현마을’은 벚꽃길에서 한수제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다.
 
   
▲ 금성산 장원봉에서 바라본 경현동 왼쪽으로 한수제가 시작된다.
 
LG화학에서 35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이경남(65세) 씨는 “고향인 교동과 가깝고 잘 아는 동네라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려고 한다”며 “사과를 6년째 키우지만 아직 제대로 맛도 못 봤을만큼 1,500평이나 되는 텃밭 일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송월동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씨는 나주시태권도협회장을 지내고 현재는 전라남도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 씨의 친구인 김관영 전 나주시 미래전략국장이 경현동 출신이다.
 
경현동이라는 이름은 사액서원인 경현서원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조선 선조 16년(1583년) 나주목사 김성일이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하여 광해군 1년(1607년) 사액받은 경현서원은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며 1979년 노안면 영평리에 다시 세워졌다. 사액서원으로 1974년 노안면 금안리에 복설된 월정서원도 경현동인 금성산 월정봉 아래 있었다.
 
마을 입구 당산나무 주변 물길을 따라 물레방앗간과 우물, 빨래터가 있었다. 금성산 깊숙이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다보사는 원효대사가 창건(661년)하고 보조국사 지눌(1184년)과 서산대사 휴정(1594년)이 고쳐지었다고 한다. 다보사는 보물 제1343호 괘불탱과 제1834호 영산전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십육나한 좌상이 있고, 대웅전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0호로 지정돼 있다. 절의 뒤편으로 후삼국시대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싸우기 위해 쌓았다는 금성산성이 있다고 기록돼 있지만 흔적을 찾긴 어렵다.
 
나주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경현동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2020년 11월 개원한 국립나주숲체원은 작년에 3만4천여명이 다녀갔고, 2022년 5월 한수제 물레길과 인공폭포가 조성돼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닭요리 일색이던 음식점은 해물과 한우, 오리 등으로 다양화되고 글램핑장이 생겼다. 시아당과 미스박커피, 라포네 위드 쌍화차역사박물관 등 개성있는 찻집과 함께 하는 경현동이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서화원 한국국악협회 나주지부장 겸 경현동 액맥이 보존회장
 
   
 
“아버지 이어 딸까지 소리에 매료된 타고난 국악인”
 
“어려서 들었던 소리를 떠올려 꽹과리를 잡고 상쇠가 됐다”
 
한국국악협회 나주지부장이자 경현동 액맥이 보존회장인 서화원(64세) 씨는 “상쇠인 아버지(고 서태민)가 앞장서고 징, 북, 장구, 태평소가 어우러진 30여명의 농악패에 사람들이 흠뻑 빠져 함께 놀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농악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시절이라 어려선 손도 대지 못했던 꽹과리를 36살 되던 해, 9남매 중 막내인 내가 아버지와 오빠들이 이어오던 경현동 액맥이를 보존하고 계승해야겠다고 맘 먹었다”고 한다. 꽹과리를 잡고부턴 마치 홀린 것처럼 빠져들었다는 서 회장은 “쇠에 따라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차 안에 꽹과리를 4개 가지고 다니며 신호에 걸릴 때마다 쳐서 소리를 느꼈다”고..
 
“아버지의 재능이 딸에게 그대로 이어졌다”는 서 회장은 “중학교 1학년이던 지혜가 길에서 들은 북소리를 듣고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며 “아버지 제자이자 ‘동네 오빠’인 고수 이한규 당시 한국국악협회나주지부장(2023년 작고)이 지혜의 북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들은 대로 정확히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북채를 잡고 소리의 세계로 들어선 서 회장의 딸 전지혜(42세) 씨는 남원춘향제, 전주대사습놀이, 임방울국악제, 보성소리축제 등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최우수상 등을 받았고, 2014년 동편제소리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 국악의 큰 줄기를 잇게 됐다. 나주에서 판소리로 대통령상을 받은 유일한 소리꾼이라고 한다.
 
30살에 닭요리 음식점 ‘황토집’을 시작한 서 회장은 “경현동 액맥이굿을 이어갈 사람들이 대여섯 밖에 남지 않았고, 고깔을 만들 사람도 한 사람 밖에 없어 그 맥을 끊길 위기”라며 “기물 보관할 장소도 없고 연습장도 열악한 현실”이라고.. 
 
경현동 액맥이 보존회의 농악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려 퍼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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