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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피하고 싶은 이야기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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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호] 승인 2024.04.14  19: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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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식 공학박사·건축기술사·수필가

죽음이라는 말은 왠지 꺼리거나 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그 단어만 떠 올려도 막연한 두려움과 꺼림칙한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있을까. 그러면서도 어떻게 죽고 싶냐는 물음에는 한결같이 잠자듯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공평한 것이 인간의 죽음이라는데 놀랍게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너무도 다양하다. 어떻게 죽느냐는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현재의 나는 전생의 업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까지 겹쳐 떠올라서이다. 그냥 죽는 삶은 없는 것 같다.

지난가을, 고교 시절부터 특별하게 지낸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났다. 의사였지만 신장이 좋지 않아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하면서도 휴일 없이 환자를 봤다고 했다. 투석하며 누워있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라는 녀석의 말이 가늠할 수 없는 무게로 들려왔다. 그에게 환자는 어떤 의미의 존재였을까. 휴일도 없이 환자 곁을 지켰던 녀석은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아내의 손과 세상과의 끈을 함께 놓아 버렸다. 아내와 손잡고 산책하다 떠났다며 안락사해서 다행이라면서 울었다. 환자 곁에만 있다가 보니 함께 해외여행 한번 가본 적 없었다며 어깨를 들썩이는 녀석의 아내에게 바보 같은 놈이라며 실컷 욕해 주며 함께 흐느꼈다.

며칠 전에는 다른 친구의 급한 소식이 전해왔다. 오래전에 신장 이식을 했으나 얼마 전부터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친구가 최근에는 집과 응급실을 오가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 더 할 일이 없다라고 했단다. 마지막 가기 전에 녀석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는 얘기였다. 오랜 세월 치매 걸린 시어머니와 외아들인 남편 병시중을 오갔던 친구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감내하며 수 없는 번아웃을 겪었을 한 인간의 아픔과 고뇌를 이해하기조차 힘들었다. 그의 아내의 순간순간 긴박하고 절절했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지병으로 대학병원 병상에 계신 아버지는 나만 곁에 남도록 했다. 남은 식구들은 제때 과수원 일을 보라며 시골로 내려보냈다. 아버지 곁을 지키다가 무료해지면 병동 주위를 걸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아버지의 지난 세월. 일제 치하 일본으로 건너가 고물상으로 부를 축적하고 6.25 사변 때는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이제 살만하니 병마가 찾아왔다며 울먹이신다.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조언을 듣고 퇴원하는 병상 침대에서 용식아 어쩌끄나라는 마지막 말씀을 들었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했다. 난 그 상황에 어찌할 줄 몰랐으며 어렸고 놀랐으니까. 몽테뉴와 톨스토이의 말이 생각났다.

철학을 한다는 건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라며 살면서 늘 죽음에 관해 생각하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적 사유는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되었단다. 아무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잘 죽는 사람은 문명사회의 허위와 탐욕에 물들지 않고 생각 없이 살아온 하층민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 죽음 자체보다는 오히려 사후 처리 문제를 염려했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속에서 몽테뉴의 말을 뒷받침해 주었다. 농부, 농노, 하인, 떠돌이 부랑자 등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어쩌끄나말속에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아내와 어린 자식들의 남겨진 삶을 걱정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었을까.

갈수록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돌아봐야겠다. 주변에는 의외로 이에 대한 준비를 마무리해 놓은 사람이 많았다. 장기 기증까지는 아니지만, 연명치료 거부와 장례 형식 그 후의 처리 방식까지 부부가 합의하고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남겨 놨다는 것이다. 이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떻게 건강을 지키고 무엇을 하면서 지내느냐 문제는 자신의 선택사항이다. 가치관과 취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더욱 실감 나게 들리는 요즘이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한 집 건너 자신이나 노인 부모의 간병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그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정신적, 경제적 고통과 갈등이 너무 크다. 특히 치매는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투병하는 동안 가족의 고통을 덜어줄 방안은 없는 것일까. 평안한 죽음을 유도하는 사회시스템이나 한계 수명에 다다랐을 때 스스로 고통을 멈추게 하는 조력 존엄사법같은 법을 서둘러 제정했으면 좋겠다.

오후 뒷산에 올랐다. 잎보다 노란 꽃 맥이 먼저 터진 나무를 보며 생강나무꽃과 산수유꽃이 헷갈렸다. 자연은 약간의 온도변화에만 민감할 뿐 흐트러짐이 없다. 죽음은 생로병사의 이치 안에서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 다가온다. 의학의 발전으로 그 시기를 좀 더 연장했을 뿐이다.

떨어진 목련꽃이 바닥에서 다시 한번 피었다가 서서히 갈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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