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지 10년, 한경직 목사님
                                                                                     논설위원 김노금

내 어린 시절은 광주 양림동 사거리에서부터 모교인 학강 초등학교의 교정, 그리고 그 옆의 기찻길로 추억된다. 양림동과 학동을 연결짓는 뽕뽕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은 맑고 깨끗하여 여름이면 동무들과 물놀이로 즐거웠다.

수피아 여중과 그 주변에서 만나 보았던 파란 눈 의 선교사와 이층집, 또 그때의 기억으로는 엄청나게 커 보이던 양림교회 예배당에서 들려오던 찬송가 소리는 시골에서 산과 들밖에 보지 못하고 유년시절을 보내온 내겐 너무나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 논설위원 김노금

특별하게 노래를 잘해서 늘 방송국에 출연을 하던 친구의 권유로 양림 교회에 발을 딛었던 것이 나와 기독교 인연의 시작이었고 한경직 목사님은 내게 그런 인연으로 가슴에 자리하신 분이다. 1950년 이전부터 이미 한국 교회를 대표하던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로서 국제무대에서 오히려 더 존경받던 분이셨다.

지금 현재 세계적인 NGO로 성장한 긴급구호와 구제단체인 월드비젼을 세웠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민족끼리의 사랑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수많은 교육기관과 봉사단체를 설립했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셨고 선교와 교육과 봉사의 정신을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 내렸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발전을 견인하고 교회의 사명의식을 확산 했던 민족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경직 목사가 가신지 10년, 이제사 비로소 그의 삶을  조명하고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들이 활발한 가운데 한 경직 목사 기념사업회가 1981년 7월 23일 케나다 벤쿠버에서 녹음한 가족에 대한 바람을 담은 내용을 공개 하였다.

그동안 한국사회와 교회에 대해서는 남기신 말씀들이 더러 있었으나 가족에 대한 유언은 처음이라는 데에 그 의미가 사뭇 크다고 생각된다. “내 이름으로 등록된 재산이 일부는 있지만 이는 다 공적인 재산이고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본래 내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그저 온전히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 했다… 주님을 따르는 나로서 무슨 재산을 소유 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이는 내 양심일 뿐이다… 이러한 결심 때문에 가족을 대할 때 늘 미안하고, 얼마나 희생하고 수고를 많이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잠깐 맡아서 관리하는 관리자이며 관리자는 신실하고 부지런하고 지혜로워야 한다면서 재능과 시간과 같은 물질을 통해 잘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세계인과 협동하되 나라와 민족을 잊지 말고 조국을 위해 공헌해 주기를“ 당부 하였다.

한경직 목사는 한마디로 그의 삶이 설교였고 그의 인격이 설교 그 자체였다. 그분 가신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의 기사나 그를 소개하는 책 속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말씀을 들은 것처럼  은혜를 받았고 그 의 음성만 들어도 감격스러워 했다고 전한다.

가정을 가지고 처자를 거느린 성직자로서 무소유와 청빈과 인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것은 독신으로 살면서 무소유와 청빈을 보여주었던 분들과 비교하여 오히려 한 차원 더 높은 무소유가 아닐까 싶다.

그토록 어두웠던 시절 그 큰일들을 개척해 나가면서 평생 당신 명의의 땅 한평 통장 하나 없이 살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는 휠체어와 지팡이와 털모자하나 남기고 간 청빈과 무욕의 삶이 기독교 내부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선한 행동을 남에게 알리거나 언론플레이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크게 망령된 일로 여기는 기독교 사상 때문이었던 점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한경직 목사와 같은 훌륭하고 고결한 지도자를 기독교의 대표적 인물로 세상에 널리 알리지 못한 기독교계는 이제라도 시급히 이 일에 정성을 쏟아 한 시대를 대표한 그의 성직자로서의 청빈하고 성결한 삶과 이 나라 근대화와 민족 복음화에도 큰 족적을 남긴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한 경직 목사의 정신을 기려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한국과 같은 많은 종교다원화 사회에서 기독교가 살아남는 길이요, 이 땅위에서 진정한 기독 신앙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