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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다시면 운봉1리 백동·백운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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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호] 승인 2024.05.13  00: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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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의 철학 민본사상, 정도전 유배지 백동마을서 시작

백룡저수지 경계로 삼봉초당 있는 백동·사기 구워 사기실로 불린 백운마을
논밭농사 주로 지어 생계백룡산 야생화·버섯·새 등 소개한 인터넷 카페

   
▲ ‘조선건국의 산실 삼봉(정도전)초당’이 덕룡산 아래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삼봉의 초사는 두자미(杜子美, 두보의 자)의 초당보다 더 길이 청사에 남으리라. 그가 전하는 것은 초사의 이름이 아니요, 조선왕조를 일관한 민본(民本)사상이요. 인민의 삶과 정신을 혁신한 토지개혁, 종교개혁 등의 영구혁명론이다. 그 사상이 동학, 의병, 독립운동, 광주민중항쟁을 거쳐 오늘 우리 사회의 개혁정신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이곳 소재동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혁명의 샘물이다." 
 
도올 김용옥이 2005년 가을에 쓴 ‘신소재동기’는 이렇게 마친다. 다시면 운봉1리 백동마을에 유배 와 조선 건국의 밑그림을 그린 삼봉 정도전의 ‘소재동기’를 도올이 해석한 것이다. 삼봉은 백동마을에서 3년여 유배생활을 통해 어렵지만 함께 나누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주사람들에게 받은 감동을 조선 건국의 핵심사상으로 삼았다. 민본사상은 백동마을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임을 소재동기가 확인하고 있다. 백룡산 자락에 있던 소재사란 절로 인해 소재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월태리에 살며 인터넷에 ‘백룡산 사랑’ 카페를 운영하는 남창원(74세) 씨는 “백룡산에 자생하는 100여 종이 넘는 야생화며 버섯, 새 등을 소개하고 있다”며 “40여년 교직생활을 통해 인연을 맺은 나주가 제2의 고향”이란다. 2013년 다시초등에서 정년퇴직한 남 씨는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고향이다.
 
   
▲ 운봉1리는 백룡저수지를 경계로 위는 백운마을, 아래는 백동마을이다.
 
“벌이 있응께 벌을 키웠제”라고 말문을 여는 박귀례(79세) 씨는 “서울의 지인들을 찾아가 꿀을 판 돈으로 살림을 하고, 분봉하고 벌을 팔아 목돈을 만들었다”며 “벌이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농약한 과수원에 갔다 오면 바가지로 퍼내야 할 만큼 많이 죽기도 했다”고 한다.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이 고향인 박 씨는 “1년에 한번 3명이 유사를 맡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샘계’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서울의 가발공장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해 백동마을 사람이 된 지 47년 째라는 허영심(73세) 씨는 “쌀농사보다 소득이 좋은 대봉 농사를 시작한 지 10여년 됐다”며 “논농사는 기본이고 쌀이며 보리, 밀 등 쉴 틈 없이 일만 하며 살았다”고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허 씨의 고향은 영암군 덕진면이다.
 
“20여년 어머니를 업고 목욕탕이며 미용실, 병원을 다녔더니 이제는 약을 먹지 않으면 걷지도 못할 만큼 허리가 망가졌다”는 이덕순(62세) 씨는 “아이들 키우느라 나주시내에서 살았는데 어머니 돌아가시던 2007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월출산의 불기운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심었다는 200여년 된 소나무 뒤로 백동마을이 있다.
 
마을 표지석 뒤 양곡창고 앞에서 밭에 뿌릴 미생물 영양제를 만들고 있는 오행우(43세) 씨는 “기계로 짓는 대농은 직장생활에 비할 바 아니란 생각에 바깥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 “3살인 아이가 다닐 유치원이 없어 집사람이 나주 시내까지 등하원시키느라 불편한 것 빼면 고향에서 사는데 만족한다”고 웃는다. 
 
“백룡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우리집 아저씨가 이장하면서 정비해 포장했고 쪼빡샘(바가지샘)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정영란(78세) 씨는 “빈집이 많아지면서 외따로 떨어진 집에 사는 게 무서워 10여년 전 아랫마을로 내려왔다”고 한다. 백동마을에서 나고 자라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정 씨는 마늘쫑 수확하고 잡초 뽑아야 한다며 호미를 쥐고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들머리에서 음식점 ‘호수정’을 했던 윤영문(54세) 씨는 “호프집이며 놀이공원, 눈썰매장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안 해 본 일이 없다”며 “여러 직업을 가졌는데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재능인 요리실력을 밑천으로 산다”고.. 윤 씨는 무안군 망운면에서 낙지요리 전문점을 경영하고 있다. 
 
   
▲ 백동마을엔 매년 3명의 유사가 음식을 장만해 주민들이 함께 잔치를 여는 ‘샘계’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행정구역 변경으로 1983년 문평면에서 다시면이 된 운봉1리는 백룡저수지를 경계로 아래쪽은 백동, 위는 백운마을이다. 백운마을에서 만난 박병인(73세) 씨는 “김대중 대통령 덕택에 장애인 특채로 경기도 안산시 환경미화원으로 20여년 근무하고 10여년 전 요양을 겸해 공기 좋은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사기그릇을 구워 팔았다 해서 사기실로 불렸는데 언제부턴가 사구실로 바뀌었다”고 한다. 박 씨는 어려서 나무에서 떨어져 다치는 바람에 장애를 입었다.
 
“어머니 모시고 살기 위해 직접 벌목한 목재를 구입해 식구들과 함께 10년 째 한옥집을 짓고 있다”는 김상희(58세) 씨는 “준공만 남긴 마무리 단계에 있어 곧 전입할 것”이라고.. 김 씨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성산 너머 노안면 안산리가 고향이다.
 
“10여호의 작은 마을이고 백동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 사실상 행정의 사각지대”라는 박병만(58세) 씨는 “금성산 안 쪽의 신광리 덕산마을도 우리랑 비슷한 상황으로 행정구역을 조정해서 두 마을을 하나로 묶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산골마을이라 농토가 적어 장작을 해서 내다 파는 게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는 박 씨는 “한겨울 추위에 어머니랑 형들이 새벽부터 나무를 해서 수레에 싣고 다시장·영산포 장으로 팔러다녔다”고 기억을 떠올린다. 30여년 광주광역시에서 유통업을 해 온 박 씨는 2015년 고향 땅에 집을 짓고 7남매 형제들과 나눌 먹거리를 위해 텃밭을 일군다고 한다. 백운마을 위로 파란하늘과 흰 구름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인터뷰/ 정기연 운봉1리 이장
 
“눈 내리는 겨울 토끼잡는다고 백룡산 뛰다녀”
 
“농사꾼은 평생 적자 인생이여. 천만원 벌면 천만원 쓸 데가 생긴당께..”
 
“뼈가 빠져라 농사 지어도 우리 내외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정기연(77세) 운봉1리 이장은 “농민들도 보고 배워 더 나아져야 하는데 선진지 견학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며 “갈수록 농업 관련 예산을 없애는 바람에 일하는 재미가 없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행정구역 변경으로 문평에서 다시면으로 바뀐 거 말고는 한번도 주소를 옮긴 적이 없다”는 정 이장은 “중고등학교 다닐 땐 친구들이랑 선후배들과 어울려 다시역까지 걸어가서 기차 타고 나주까지 2시간여를 통학했다”고 어릴 적 추억을 꺼낸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에 토끼 잡는다고 백룡산을 뛰어다니기도 했다”는 정 이장은 “어릴 때 최고의 교통수단이 자전거였는데 우리 마을엔 한 대도 없었다”며 “다른 데서 자전거를 보고 오신 어르신이 ‘여물도 안 먹고 잘 가더라’고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어서야 호적을 만들어 또래 친구들보다 4년 늦다는 정 이장은 “학교에 낼 초본을 떼러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가서야 호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문평면사무소가 멀어 이장한테 맡겼는데 깜빡 잊었던 것”이라고.. 
 
대전광역시에서 건설공병단으로 군복무를 시작한 정 이장은 “각종 건설현장을 다니며 남들보다 편하게 군생활을 했는데 전역 3개월 앞두고 전투사령부로 개편되는 바람에 광주로 전출와서 예비군 교육 담당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무안군 현경면으로 시집 간 마을 사람 소개로 정월 초닷새에 선 봐서 보름 뒤에 예식을 올렸다”는 정 이장은 “그땐 좋고 싫고 없이 어른들이 정해준 대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며 곁에 앉은 부인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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