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조교수 박 정 석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정체성은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사람과의 차별화 혹은 동류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정체성의 준거 요인들은 우리 자신과 타자를 구별하는 가운데 형성된 여러 형태의 삶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쉽게 인지할 수 있고 또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음식은 본질적으로 정체성을 내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기에 좋은 것’ 그리고 ‘생각하기에 좋은 것’으로 선택하고 분류한다. 특정 음식의 정체성 변화는 사회변동의 맥락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이것은 음식 자체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는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음식물을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그 음식의 정체성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소위 ‘압축적 근대화’를 겪었다고 일컬어진다. 1970년대 이후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음식의 생산과 소비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음식의 생산과 소비에서 급격한 ‘탈지역화’가 발생하고 세계화와 더불어 수입음식이 증가되었다. 음식의 탈지역화와 세계화는 선박 및 항공 산업의 발달과 음식물의 저장/냉동 기술 및 상업적인 유통체계의 발달에 힘 입은 바 크다. 음식의 세계화 과정은 음식의 동질화 및 서구화로 이어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음식의 지역정체성 강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음식의 세계화와 지역정체성 강화는 서로 배타적인 현상이 아니라 시장 자본주의에 따라 발전된 서로 다른 두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의 세계화와 지역정체성 강화의 양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홍어이다. 현재 홍어는 수입산이 국내산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수입한 원산지보다는 그것을 가공해서 판매하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과 연계되어 소비되고 있다. 예컨대, ‘탈지역화’ 되어 수입된 홍어가 가공·처리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특정한 지역의 음식으로 ‘재정주’ 했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또 다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흑산도, 목포, 영산포에서의 현지조사를 통하여 홍어라는 특정 음식물이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토속음식으로 자리매김 되면서 그 음식의 역사성과 순수성이 어떻게 강조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음식의 탈지역화 혹은 세계화 과정 속에서 홍어가 지역의 ‘고유한’ 음식 혹은 상품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을 분석하고자 한다.

2. 참홍어(흑산홍어)와 흑산도

음식의 변천사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그 음식에 대한 공식적 그리고 사적인 담론으로 표현된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 음식은 역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이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담보한 문화적 표지로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음식이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특정 지역의 ‘순수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간주되는데서 비롯된다. 이런 은유 때문에 특정 지역의 음식이 ‘정통성’의 상징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흑산도는 홍어의 본고장으로 치부되어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홍어는 다른 지역의 홍어 혹은 수입홍어와 구별되어 ‘흑산홍어’라고 불리며 흑산도 홍어의 순수성이 강조되고 있다. 흑산도라는 지역명이 곧 홍어의 정통성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대개 홍어는 간재미나 가오리와 혼동되거나, 뭉뚱그려 이들 모두가 ‘홍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홍어라고 불리는 것은 간재미의 공식 이름이고 흑산홍어는 참홍어의 다른 이름이다. 즉, 학명으로는 간재미가 홍어(Okamejei kunojei)이고 흑산홍어는 참홍어(Raja pulchra)라는 것이다. 이런 명칭의 혼동 못지않게 지역적으로 간재미와 홍어를 구분하지 않거나, 간재미를 홍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정 지역사람들이 ‘옛날부터 홍어를 먹었다’는 주장이 간재미를 먹었다는 것인지, 홍어를 먹었다는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홍어와 가오리 그리고 간재미를 구분하는 것은 바다 사람이나 학자들에게는 유의미했을지 몰라도 그것을 소비하는 육지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거나 구분자체가 곤란했을 것이다.

1) 흑산도와 홍어

흑산홍어의 ‘오랜’ 역사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기록되어 있다. 『자산어보』의 무린류(無鱗類)에 첫 항목으로 ‘분어(?魚)’가 나온다. 정약전은 분어의 속명을 ‘홍어(洪魚)’라고 하였다. 『자산어보』는 홍어의 크기나 모양 등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흑산홍어를 소개하는 글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하지만 당시 정약전도 홍어와 가오리를 혼동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 『자산어보』에 나오는 어패류를 분석한 이태원에 따르면, 홍어는 정약전이 기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새끼를 낳는 물고기가 아니라 알을 낳은 난생어종이라는 것이다. 그는 홍어와 간재미는 알을 낳지만 노랑가오리나 청달내가오리 등 색가오리과 어류는 알 대신 새끼를 낳는다고 하였다.

흑산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미끼를 끼운 연승주낙을 이용하여 홍어를 포획하였다. 주낙으로 홍어잡이를 할 당시에는 어선의 규모가 작아 주로 흑산도와 홍도 인근 해역에서만 조업을 하였다. 주낙은 미끼를 사용하기 때문에 미끼용 고기를 따로 잡아야 하고, 또 주낙에 일일이 미끼를 끼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량이 많이 투하되는 어법이었다. 홍어 주낙의 미끼로 쓰기 위해 봄철에는 고데구리(소형기선저인망)로 깡다리(강달어)를 잡았고, 겨울철에는 주낙으로 놀래미를 잡았다. 하지만 고데구리 어선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서 홍어잡이 배들이 미끼를 구할 수 없어 조업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주낙어법으로 홍어잡이를 하던 어선들 대부분은 지금처럼 흑산도가 아니라 다물도(多物島)와 태도(苔島)를 근거지로 하였으며 이들 지역이 홍어잡이의 중심지였다. 다물도 사람들이 ‘홍어밭’이라 부르는 어장은 홍도 동쪽에 있는 ‘홍도안골’과 다물도 서북쪽에 있는 ‘삼봉내기’라 부르는 곳이다. ‘삼봉내기’ 홍어어장은 흑산도의 문암산, 선유봉, 옥녀봉을 기준으로 ‘첫삼봉내기’, ‘둘째삼봉내기’, ‘삼봉내기’ 등으로 불리는 구역이 있으며, 이곳을 찾아갈 때는 흑산도의 세 봉우리를 가늠하여 찾아간다. 홍어는 항상 다니는 길을 따라 회유한다고 하며, 홍어가 다니는 길은 홍어잡이 선장만이 알고 있는 일종의 전문지식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