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명품을 찾아서  
                                                                               논설위원 김노금

입춘과 우수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  한바탕 눈이 내린 자리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주말 오후 외출을 준비하다 문득 딸아이들이 선물한 이른바 명품이라는 가방에 눈길이 간다.

그 좋은 젊은 날을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도록 검정 치마 바지에 검은색 윗도리를 제복처럼 입고 다녔다 그리고 만원짜리 가방에 구두 하나면 족한 줄로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딸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제 밥벌이 하던 날로부터 딸들 덕분에 옷가지며 핸드백과 화장품 등의 브랜드를 한 두 가지쯤은 겨우 구별 할 줄 알게 되었다. 

부모품을 떠난 서울살이로 자신의 몸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을 딸들이 저희들 보기에 멋탱이라고는 없는 촌스런 엄마가 도무지 경쟁력이 없어 보였는지 철따라 이런 저런 고급 브랜드로 엄마의 촌티를 벗겨 주려 애쓰는 마음 씀씀이가 제법 가상하게 느껴진다. .

▲ 논설위원 김노금

딸내미들 등살에 떠밀려 재래시장과 오일장의 익숙함 대신 백화점을 갈 때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지만 그럼에도 딸들의 배려가 고맙고 대견하여 어여쁜 마음과  함께 맛보는 행복감이 작지 않다.

1~2만 원짜리 핸드백만으로도 족하다는 내게 딸들이 굳이 비싼 가방과 구두를 고집하는 것은 고급 브랜드와 명품의 차이에서 오는 세태의 흐름을 나름대로 간파한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이 사십이 조금 넘고 오십 이쪽저쪽의 나이가 되면 거의 모든 여성들은 브랜드가 같은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

열 명중 한두 명을 빼고는 대개 짝퉁이지만 얼른 보기에는 진품이나 짝퉁이나 거의 비슷하여 구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번에 명품과 짝퉁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을 꼭 품고 뛰면 거의 진품이고 반대로 자신이 비를 맞지 않기 위해 핸드백을 머리위로 올리고 뛰면 100%로 짝퉁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계급 문화의 전통성이 대단히 강해서 명품 이용자는 상류층에 국한되어 있고 그들은 철저하게 소수 상류층의 상징 자본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전통적 신분 질서가 무너진 한국에서는 월세방에 살아도 너나 할 것 없이 명품을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다. 그도 못하면 짝퉁이라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참 희한한 민족성을 자랑하는 것이 우리네 풍속도이다.

옷치장에 들고 다니는 가방만으로는 부유층과 빈곤층을 도무지 구별할 수도 없고  패션과 액세서리에 관한 한은 1~2만 원 정도로도 얼마든지 명품족 비슷한 치장이 가능한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소비는 단순한 사용가치가 아니라 값비싼 명품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기능을  함께 한다고 볼 때 핸드백과 액서사리도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분 상승을 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이들의 상류문화를 모방하려는 이 심리를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른바 한국의 중산층들 이라는 이들의 허영심이 참 딱하게만 여겨진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 명품에 대한 열망이 대단히 크다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른 신흥 부자가 급증 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이는 자기 자존감에서 오는 평등주의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언제고 열심히 노력하면 신분의 상승을 이룰 수 있다고 자부하는 계층이 많아진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진품의 권위에 도전하는 도무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짝퉁이야 말로 진정성이 사라진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그지없다. 남 앞에 지고는 못사는 국민성. 그리고 모든 이에게 땀 흘려 노력하면 얼마든지 부의 축적과 경제적 성공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모든 이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아 보이기는 한 것 같다.

그러나 과시하고 드러내는 것 보다는 정신적 만족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나보다 못한 이웃에 대한 배려가 우리들의 삶을 더 풍성하게하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바람 끝에 묻어오는 봄의 향기에 설fp이는 날. 내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명품 핸드백이 왠지 낯설어져 문득 진정한 명품 인생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는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