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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忠勇大節의 忠烈公 鄭麒麟 將軍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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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승인 2009.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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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정씨대종회고문 정상채(동수동)
 
공(公)의 휘(諱)는 기린(麒麟)이요. 자(字)는 성서(聖瑞)이며 호는 뒷날 선조왕(宣祖王)께서 백자장(白字將)이라는 호(號)를 내리셨으니 御賜號 白字將이다. 庚申 1560년 전남 함평 수호리 송정에서 출생하니 考는 嘉義大夫 戶曹參判을 즉직 받음 諱萬珠公이요.

비는 증 貞夫人 咸豊吳氏이다. 모부인 정부인께서 公을 잉태할 때 이상으러운 神獸가 집으로 들어온지라 옆에 사람이 무르니 麒麟이라 하여 꿈에서 부조 참판公에게 이야기한즉 틀림없는 태몽이요.

아들이 틀림없으니 뒷날 아이의 七代租이신 景烈公과 같은 名將이 태어날것이다라 한 바 과연 10개월 후 公이 탄생하니 태몽에 따라 名을 麒麟으로 하였다.

 

성장과 입신 종사

공은 기골이 장대한 풍채가 준걸스럽고 어려서부터 용력이 뛰어나 주변에서 소년장군으로 호칭되었다. 또한 재능과 총명이 과인하지라 아버님 참판공이 장차 대기를 기약하고 교육과 훈육에 모든 힘을 쏟으니 학문도 일취월장하였다.

그러나 공은 학문보다 기마와 궁술에 뛰어나니 참판공이 “문도 중요하지만 무로서 일가를 이룸도 좋은 일이다. 선조 경열공의 혈통이 우리 아이에게서 꽃피울 것이다”라고 아들의 자질을 살려 양반가에서 서는 드물게 무예의 연마에 보살핌이 컸다.

문예 또한 일찍부터 성취가 있어 어린 나이에도 곧잘 시를 읊으니 뒷날 공은 문무겸전지사(文武兼全之士)라 한 것이 이때 배움의 결과다.

일찍이 젊어 공이 가로되 “문과 무가 모두 다 배울수록 어려우나 선조 경열공이 구국대공은 내가 항상 추모하는 길잡이이니 나는 무로써 입선하겠노라”라고 다짐하였다.

선조 18년 무과에 등과하여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겸절교전좌부장 등에 올랐으나 왜란으로 국가의 위태로운 시기에 국록을 먹고 있는 신하로서 평소에 충렬공 고경명, 고인후, 고종후 삼부자와는 봉직(奉職)시 충열공 고경명 장군과 스승과 제자 격으로 존경하였다.

장군의 삼부자의 충절과 애국충정의 정신에 감화된바 컸던 것이다./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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