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녘을 바라보며....
                                                                                   논설위원 김노금

도심의 가로수 은행나무 잎이 노란 빛깔로 가을 알리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사귀에도 붉은 빛 색깔의 기운이 물들어 가고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한 단풍나무 잎에 물든 빨간 빛깔은 곱고도 사랑스러워 벌써부터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나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넓은 들녘은 예년에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황금벌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참으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태풍도 비껴가고 거기에 뚜렷한 일교차 때문인지 예년에 볼 수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투명한 가을 햇살에 마지막 까지 온전한 알곡을 익혀가는 벼들을 보며 실로 오랜만에 충만한 기쁨과 풍성함을 느껴본다.

▲ 논설위원 김노금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름답고 풍성한 결실에도 탄식하며 영농비 걱정에 땅이 꺼지는 한숨 소리 가득한 농촌 실정에 가슴이 아려온다. 모든 물가는 천정부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쌀값은 자꾸만 떨어져 천덕꾸러기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풍년이 들수록 깊어가는 농민들의 근심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할까?

땀과 눈물을 모두 쏟았지만 수확을 해봐야 오히려 손해인 이 계산법은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일까? 자식 키우듯 정성들여 가꾼 곡식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너무나 안타깝다. 얼마 전 남평 미곡 종합 처리장 정문 앞을 천막과 트랙터로 막고 쌀 반입, 반출을 저지 하던 농민들을 볼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순박한 얼굴들.. 평생을 뙤약볕에서 죽어라 허리 쭈그러진 안면 있는 몇몇 분의 늙은 등은 너무나 허전하여 바라볼수록 눈물이 났다.

이 땅의 새끼들을 업어 키우며 그 사랑과 똑같은 정성으로 고이고이 키워낸 알곡들인데 수고의 대가는커녕 갈아엎고 불태워야 하는 성난 농심이 너무나 기막히고 그 분노의 굽은 등이 가슴 가득한 슬픔으로 다가와 아직 까지도 가슴이 먹먹하다. 격화되고 있는 농민들의 분노와 농민 시위의 심각성도 폭발 일보직전인 것 같다. 정부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임을 인식하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문득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난다. 농업도 국민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엔 입이 중요하고, 2만 3만 달러엔 코와 눈 그리고 3만 달러가 넘으면 머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가?

배고프던 시절의 먹을거리가 해결되었다면 이젠 보기에도 좋은 농업을 해야 한다는 바로 경관 농업 이야기였다. 경관 농업은 메밀, 청보리, 해바라기 같은 경관 작물을 심어 농업 소득을 올리면서 관광수입도 버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북 고창의 학원 농장 30만평의 청보리 밭의 예이고, 강원도 평창의 메밀꽃 단지이다.

청보리 밭을 보러온 인파가 50만 명이고 그 중 10만 명이 1시간 동안 머물며 1인당 8,000원 (보리밥 6,000원 커피, 아이스크림 등의 간식 2,000원)을 쓴다고 할 때 8억 원인데 30만평 보리는 다 팔아야 3억 원이라고 할 때 경관 농업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농업의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강원도의 메밀꽃 단지도 경관 농업으로 대박이 났다고 한다. 고향 마을의 흙돌담, 해돋이, 한 여름의 해바라기 길 그리고 가을 붉게 타는 단풍길 옆으로 펼쳐진 황금들녘 모두모두 아름다운 경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황금 물결치는 들녘을 다시 한 번 바라다본다. 묘한 서글픔과 분노에 가슴이 아려오지만 사랑하는 부모형제의 땀과 열정의 작품인 이 들녘의 풍경도 어쩌면 농촌을 살리는 또 하나의 돈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