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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방직 재창업
종업원 300명에 방직기 500대로 시작
부흥은행(復興銀行)으로부터 빌린 95만엔으로 설비를 사들인 서상록은 1948년 1월 경에 이천방직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종업원만도
300명에 500대의 방직기를 갖춘 대형 공장이었다.
초창기 회사로서 그만한 대수의 방직 기계를 확보하게 된 것은
그동안 쌓아온 제철업계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록과 이천 공업 직원들은 폐허를 누비고 다니면서 파괴된 직기의 부품을 찾아내어
트럭에 싣고 왔다. 그리고 기름을 친 다음 조립하는 식으로 기계 대수를 늘렸다. 소위 '기모도 식'이라고 부르던 폐기처분 일보 직전의 구식
기계도 재생했으며, 웬만한 고장쯤은 이천 공업의 기술진이 달려들어 금방 수리해 냈다.
전쟁이 끝난 후
방직분야가 유망할 것이라는 상록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미국이 일본을 자유 진영의 전초기지로 만들어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강대국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에 따라 지원을 받은 업종 중 하나가 방직 산업이었다. 방직 산업은 비교적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데다 한시라도
빨리 생필품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켜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는 산업이었다. 그래서 원면 등 섬유 원료 수입에 우선적으로 외화를 배정하는 한편
업체의 시설과 보수에도 일정한 재정적 지원이 주어졌다.
이천방직을 키우면서 상록은 1인 4역을 해야 했다. 기계설비에서
보수까지, 그리고 원사의 구매와 제품의 생산관리, 거기에다 나중에는 판매까지 나서야 했다. 500대의 기계를 풀로 가동해도 날로 늘어가는
소비자의 수요에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상록은 과거 함께 일했던 동업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상록이 보여준 성실한 자세와 신용을 믿는다며 투자를 했다.
소비자들에게도 이천방직의 출현은 큰 호응을 얻었다. 고작해야 낡은 군복이나 수선해 입고 다니던 일본 주민들로선 값비싼 직물보다 이천방직에서
내놓은 인견직(人絹織) 새옷감이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차차 방직 기술을 터득하면서 상록은 인견직에서 처음 방직
산업으로 진출을 구상할 때 염두해 둔 나일론으로 눈을 돌렸다. 다음은 옷감의 질이었다. 이미 일본 내에는 나일론 옷감을 짜내는 공장이 수없이
많았으므로 질 좋은 천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후발업체로서 약점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록은
방직 기계의 조립과 설치 등을 반복했다. 기술진들과 밤새도록 기계를 해체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가동하면서 가장 결이 고른 천을 짜낼 수 있도록
재조립하였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천 방직의 제품은 전혀 후발업체로서 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당당히 직물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일본 내에 공장을 세워 운영하다 보니 걸핏하면 제동이 걸리고 암초가
등장했다.
원사를 천으로 짜서 염색 과정까지를 거치는 방직 공장을 가동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해 물질을 배출하기
마련이다. 한국과는 달리 그때부터 일본인들은 공해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로 인해 주민과 회사 간에 시비가 벌어지면 여지없이 회사가
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공장 내에 정수탑을 설치해 최대한 물을 걸러내 밖으로 내보내도 항의는 그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공장이 자리를 잡고 회사와 주민 간에 공생 관계가 형성돼 가는 시점에서 느닷없이 공해 문제를 둘러싸고 시비가 벌어졌다. 주민들이 이천 방직의
공해로 피해를 보았다면서 배상금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정은 더욱 불리해졌다.
같은 유형의 공해 배출 사건이라 하더라도 한국인 공장주는 일본인에 비해 무려 50배 이상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50배의 배상금을
물었지만 이천 공업은 예상을 깨고 번창했고, 이천방직에서 만든 옷감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임직원들이 가마니에 돈을 가득 채워 은행으로 향할
정도로 이천방직은 성공을 한 것이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