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나무에 꽃이 핀 사연
                                                                                        논설위원 김노금

어디선가 구월이 오는 소리라는 노래가 들려온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 패티 김의 가을 노래에 문득 센티해지는 마음이 들지만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왕 언니의 가을편지와 멋진 소식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대학원 공부를 함께했던 그 분은 소녀처럼 아름답고 늘 밝은 얼굴에 지적 호기심 또한 왕성 하여 누구보다도 씩씩한 학생이었다.

정년을 2~3년 앞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도 2~30대의 젊은이 보다 매사에 더 적극적이었고 언제 어디서나 분위기를 아름답게 이끌어가는 왕 언니로 모든 사람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학생이었다. 하루 온 종일 아이들과 시달리고 밤에는 또 10시가 넘게 공부를 해야 했음에도 늘 밝고 싱그럽기 그지없었고 패션 감각 또한 뛰어나 언니만 보면 오히려 나이 어린 우리가 힘이 솟는 그런 즐거운 기억을 갖게 해준 분이셨다.

▲ 논설위원 김노금

학교를 졸업하고도 특유의 부지런함과 호기심으로 시를 공부한다고 해서 여전한 모습에 흐뭇했었다. 그런데 오는 8월 31일 평생의 직장생활을 마감하는 퇴임 날 6시에 “고목나무에 꽃이 핀 사연”이라는 시집 출판을 한다는 소식을 알려 온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은퇴준비가 안된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들어 왔는데 이토록 야무지고 아름다운 정년퇴임과 새 출발이 또 있을까 싶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50 년에 가면 한국의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35%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는 수치라 생각한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도무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평균 수명은 길어지고 평생직장의 개념은 허물어진 상태이다. 은퇴한 뒤 20~30년 이상을 생산적인 활동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분의 경우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서 교육일선에서 최선을 다해왔고 정년을 앞두고 사회복지 전공이라는 또 다른 노후의 삶에 대한 분명한 밑그림을 그려 오더니만 시집 출간과 함께 9월부터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공부할 때마다 늘 되뇌던 소외된 자들 병든 자들을 찾아 돕고 위로하며 격려해주면서 보람을 찾고 거기다 시로서 아름답게 삶을 수놓을 그 분의 삶이 너무 귀하게 여겨져 자못 기대가 된다. 노년에의 분명한 삶의 의미와 목표가 없다면 결코 진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체념하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원숙하고 적극적인 삶으로 주변을 깨우고 밝히며 살아간다면 참으로 복 받은 노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목나무에 꽃이 핀 사연’이라는 제목도 참 마음 훈훈해 지는 제목이다. 남들은 모두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그 시점에서 이토록 멋지게 꽃을 피워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큰 병원의 병원장으로 방송국 리포터로 남들 보다 몇 배 더 분주한 생활일 수밖에 없는 아들 며느리 그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직장인과 야간 대학원생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다섯 살 먹은 손녀딸을 돌봐주시던 일까지를 흔쾌히 감당하던 가슴 저린 모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도 울었다는데 하물며 사위어가는 고목나무에 저리 탐스러운 꽃을 피워내기까지의 사연 임에랴.  말로 다하지 않아도 그 인내, 그 오래 참음과 수고와 눈물의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랴 싶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구월이 오는 소리라는 노래를 들을 때 마다 봄 여름을  태만하게 보내고  이리 가난한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건 아닌지 싶어 왠지 가슴에 마른 바람이 일곤 했는데 이 노래조차 오늘은 씩씩한 환희의 노래로 들려온다.

한 평생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던 어려움과 고통의 날들이 왜 없었을 까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세월로 인해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분이 나를 사랑해 주는 가까운 지인이라는 데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낀다. 고목나무에 꽃이 핀 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