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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법 패밀리 ‘원만한 분들의 치부’
2004년 자신이 경험한 법조계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은 책 〈헌법의 풍경〉으로 주목받았던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번에는 법조계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박원순 변호사가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희망제작소의 ‘우리시대 희망 찾기’라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 경찰, 민·형사상 소송 경험자, 법원 일반직원,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과 여직원, 브로커, 마담뚜, 신문기자, 시민단체 관계자, 법학교수
등 23명의 구술을 원고지 7000장 분량의 녹취록으로 정리해 만들어졌다.
‘법조계는 부패한가, 청렴한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으로 출발하지만, 인터뷰를 거치면서 현실은 좀 더 복잡해지고 교묘해진다. 이를테면 전직
차장 검사로 모셨던 상사가 변호사로 개업한 뒤, 회식 자리에서 현직 후배 검사들에게 상품권을 돌렸을 때 어떻게 처신할까. 변호사와 판검사가 함께
술을 마셨거나 골프를 했을 때는 누가 돈을 내고 왜 낼까. 이른바 ‘관행’과 ‘법조비리’ 사이의 경계선이 그리 단순하지도 명쾌하지도 않다는 점이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다. 문제의 핵심에는 ‘전관예우’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처럼 치열한 법적 공방 대신, 재판부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느냐가 수임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잠정 결론이다.
또한 판검사라는 ‘특권’ 속에서도 끝없는 서열경쟁에 시달리며 관료제와 권위주의의 늪에 빠지다, 불법 청탁과 브로커의 고용이 일상화한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법조계 인사들의 입을 빌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종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 ‘비싸고 맛없는 빵’에서는 형편없는 법률 서비스와 비싼 수임료 및 따로 주는 ‘돈’에 대해
다루고 있다. 2장은 ‘큰 돈, 푼 돈, 거절할 수 없는 돈’에서는 자신의 스승과 다름없는 선배 검사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후 실비 명목으로
돈을 주었을 때, 술자리에서 변호사가 돌리는 상품권을 거절할 수 없는 검사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가족과도 같은 유대감과 스승과도
같은 관점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3장 ‘부담스런 청탁, 무서운 평판’에서는 2008년 기준 변호사 1만173명, 판사 2352명,
검사 1676명 모두 합치면 1만4201명이라는 좁은 법조계에서 청탁과 평판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4장 ‘신성가족의
제사장, 브로커’에서는 법조계의 영업사원인 사무장들의 인생을, 5장 ‘팔로역정…’에서는 법조인들이 이겨내야 하는 8가지 유혹을 상세히
기술함으로서 장차 법조계에 뜻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건너야 할 함정들을 나열했다.
저자는 판검사와 변호사를 인터뷰하면서 법조계의 문제가 돈보다는 ‘평판’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 한번의 시험에 합격하여 똑같은 기관에서
교육받은 이 소수 엘리트집단 안에서는 일정한 평판이 떠돌고, 그 평판은 평생에 걸쳐 법조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 판검사 입장에서
선후배들이 들고 오는 돈과 청탁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가는 승진은 물론, 변호사 개업에도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자기 평판을 관리해 ‘사법
패밀리’로 살아야 한다는 법조인들의 의식이 돈과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를 만들고, 결국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시민들은 높은 수임료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법조비리의 핵심이랄 수 있는 브로커를 ‘신성가족의 제사장’이라고 명명한 저자는, 그들은 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해 주고 수임료의
30%를 나눠먹는다면서, 그는 ‘이들이’ 해먹는 30%의 수임료가 모두 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브로커 없이는 사건을 물어올 수
없는 변호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들에게 밥줄을 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수임료의 30%를 떼어 가는 브로커들, 브로커들의 몫을 나눠 가지는 각계의 ‘해결사들’, 높은 수임료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 등, 법조계의 치부가 날것으로 파헤쳐진다. “그야말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해먹을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가 되고 마는
것”(203쪽)이 현재의 법조 시스템이라는 김 교수의 진단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과 신영철 대법관으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화두가 된 시점이어서 이 책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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