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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
장애인이자, 9년에 걸친 암 투병 중에도 강단에 복귀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유작이다. 지난 9일 57살로 세상을
뜬 그에겐 다섯 번째 수필집이자 마지막 책이 됐다.
장 교수는 3월 말 출판사에 이 수필집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원고를 넘기고 4월 말 병상에서 손수 마지막 교정까지 봤으나, 5월
8일 책이 나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어 대신 가족이 책을 받아 병상의 그녀에게 출간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 교수는 병상에서도 놓지
않았던 이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한 체 이튿날 5월9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장교수가 지난 2000년 이후 월간 〈샘터〉에 ‘새벽 창가에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수필들을 모은 이 책은 결코 순탄치 않았던 고인의
마지막 생애 9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후 1년 만에 찾아온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영문학자로 강단에 우뚝 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줬던 그는 마지막 9년
동안 보통 사람이 한 번도 감당하기 어려운 암 판정을 세 번이나 받았다.
길고 고통스런 투병 과정은 책제목에 ‘기적’을 넣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 것 같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난 다시 그런 기적 같은 삶을 살기가 싫다. 기적이 아닌,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절대 기적일 수 없는
완벽하게 예측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장 교수는 결국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마지막 유작의 이름을 달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이다”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라며 책제목에 삶에 대한 희망과 강한 의지를 담았다. “나는 참 많이 바깥 세상이 그리웠다. 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그 모든 일상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 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 나고 부러웠다.” -p 126 중에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깥 세상으로 다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그가 그토록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소박한 흔적을 덤으로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이 책에는 저자 개인의 경험을 넘어 우리네 삶의 체취와 감상들이 반듯하고 따뜻하게 녹아 있다. 그의 글들은 절망 속에서도, 나날의 힘겨운
삶 속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장애와 암 투병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글은 결코 무겁거나 우울하지가 않다. 자칫
암울해지기 쉬운 소재들을 적절한 유머와 위트,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장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곧 물에 잠길 운명인지도 모른 체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만 부르는 눈먼 소녀의 이야기에 대해 한 학생이 “이런
허망한 희망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고 질문하던 기억을 들려준다.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 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 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그 말은 어쩌면 그 학생보다는 나를 향해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라며 그녀는 이 책을 마친다. 비록 장 교수에게 기다리던 새봄은 오지 않았지만 그의 글 속에서 희망을 전파했던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기적과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 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