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 부르는 결혼 허례 문화
                                                                                      논설위원 김 노 금
  
얼마 전 오랫동안 소식이 뜸하던 대학 동창생이 호텔에서 하는 딸의 결혼식에 꼭 와달라는 청첩을 했었는데 평소의 친분이 그다지 깊지 않았던 터라 몇 번이고 망설이다 참석했던 적이 있다. 초대받은 동창생 몇 명과 한 테이블을 잡고 식사 중에 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는 공무원 남편을 따라 사는 시골 아낙에게는 여러 가지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편과 결혼해서 초년에는 고생 좀 하다가 이제는 좀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돈을 좀 벌었던지 예식장의 모든 것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자식 결혼시키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잠시들은 것만 헤아려 봐도 웨딩드레스 빌리고 신부화장 하는데 500만원 웨딩케익100만원, 촛값 30만원, 신부가 입장하는 꽃길과 주례석을 가득 채운 꽃값만 650만원, 신혼 여행비 800만원 ,사진 값 300만원, 얼음조각 50만원, 현악 5중주 초청비 50만원, 그리고 무엇무엇 등등….
 

▲ 논설위원 김노금

주거니 받거니 셀 수도 없는 부분들을 친구들은 잘도 기억하고 알고 있었다. 왕래가 별로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내 짐작이었지만 큰 것만 얼른 계산해 봐도 당일 소모된 돈이 삼천만원 이상은 더 들었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거기다 하객 식대 값이 1인당 오만원이 다 되는 스테이크에 식탁마다 삼만 원짜리 와인과 7,000원 짜리 맥주 5,000원 짜리 사이다가 따로 계산되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해 온 오만 원짜리 축의금 봉투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놀라워하고 기막혀 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정말 이건 별거 아니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잘 나가는 자기네 집안 누구든 이보다 배가 더 들었다느니 연예인들 누구누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느니 하면서 짐짓 여유들을 부리고는 있었지만 집사주고 혼수 마련하고 값비싼 예물을 뺀 결혼 비용이 그것도 식대 빼고 삼천만원이 넘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되지 않은 일이었다.
 
젊은 남녀가 만나 앞으로 어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으로 두 손 굳게 잡고 씩씩하게 잘 살아 보이겠다는 의지를 약속하는 결혼식의 본뜻은 온데간데없고 결혼식을 기회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런 돈 자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싶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이런 초호화 결혼식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 끼리씩만 하는 일로 그친다면 그런 세계도 있는가 보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상류층이 1억 2억을 우습게 쓰면 단돈 만원 쓰는데  지갑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서민들도 몇 천만 원 정도를 쓰지 않고서는 버티기가 힘들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축의금이나 부조금은 어차피 우리 서민들에겐 서로 돕는 상호 부조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다소 뜸했던 친지들과도 애·경사를 통해 다시 인간관계를 맺게 해주고 또 그러한 일이 세상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임에도 이 귀한 일들이 지나친 허례 앞에 주눅이 든다거나 갈등을 느끼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가끔씩 고위층 인사들이 남몰래 치르는 자녀 결혼식이 대단한 미담으로 회자되는 경우를 본다. 사는 형편이 웸만한 사람들이라면 가족들만의 조촐한 결혼 예식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서민들은 이때 한번 도움 받으려고 평생 여기저기 적금을 붓듯이 성실하게 친지의 애·경사를 찾아다닌 터이기도 하려니와 살림살이의 형편도 그렇게 남몰래 치를 수 있는 경제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고위층들처럼 도무지 미담 사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다. 모든 문화의 흐름이 그렇지만 특히나 혼례의식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들불처럼 그런 문화들은 걷잡을 수 없이 아래로 아래로 번져 간다. 대개의 젊은이들이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직장에서 먹고 저녁은 피곤하니까 밖에서 먹고 들어가는 상황에서 몇 백 만 원짜리 초대형 냉장고는 뭐며 둘이 사는 살림살이에 삼십 몇 평 아파트는 또 뭐란 말인가? 돈 있는 사람들이 멋지게 좀 살겠다는데 웬 시비냐고 하면 참 할 말 없어진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두 손 맞잡고 원룸부터 살더라도 부모 등허리 휘지 않게 자신들의 분수에 맞는 신혼살림과 예단, 그리고 농협 강당이나 주민회관 그리고 교회에서 드리는 조촐한 예식과 다소 소식 뜸했던 친지들도 모두 함께 모여 축하하며 나누는 국수나 곰탕 한 그릇...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인 듯싶으나 할 수만 있다면 지도층부터 제발 좀 이런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삼만 원이나 오만 원짜리 축의금도 혼주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고 가정 경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망국으로 치닫는 사회 전체의 허례 풍조도 바로 잡는 것이 될 것이기에 해본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