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을 뛰어넘어 소통의 정치 ‘정쟁’을 이룬 사람들,
그들이 꿈꾼 조선 탕평 정치의 이야기

‘당파싸움 때문에 조선 왕조는 망했다’는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얘기다. 이 책의 저자 신봉승은 이런 식의 매도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이것이 대표적인 망언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조선왕조의 정쟁은 높은 뜻과 이론에 의거한 신념의 대결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를 모두 당파싸움으로 매도하는 것은 일제의 식민사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신씨가 이번에 펴낸 《조선 정치의 꽃 정쟁》은 이 같은 시각을 반영한 책이다.

조선왕조를 가로지르는 정쟁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고 있는 이 책은 당대의 대표적인 정쟁 31건과 그 시대상황, 그 속에서 명멸했던 인물들의 뜻과 행동을 드라마처럼 재현해 유장하게 담아내고 있다.

사료적 기술과 소설적 이야기체가 혼합된 이 책엔 사실과 허구가 적당히 버무려져 있다. 사실을 기본으로 하되 최소 필요한 허구를 가미한 일종의 팩션(faction)인 셈이다. 저자는 이를 ‘행간으로 읽는 역사’라고 했다. “역사서의 문자만 읽으면 부분은 읽어낼 수 있으나 시대정신을 간추리기는 어렵다”며 “재미와 통찰을 위해 역사서의 문자와 문자 사이에 비어 있는 행간을 상상력으로 채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로 극작가 신봉승이 출간한 《조선 정치의 꽃 정쟁》은 선조부터 순조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친 230년 동안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는 붕당으로 점철된 조선조에서도 각종 사화와 환국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던 시기였다. 저자는 송강 정철의 재기와 몰락 과정을 시작으로 크게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의 3개 장을 통해 군강신약을 노렸던 왕들, 명분과 이념에 목숨을 걸었던 신하들 사이의 대립과 충돌, 소통과 타협을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한 저자의 역사관은 뚜렷하다. 조선이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자기비하적인 식민사관을 버리고 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자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조 정쟁을 고도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사대부들의 치열한 논전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당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둘러싼 깊이 있는 이론·노선 투쟁들이 정치적인 시류를 탔다고 해서 모두 당쟁으로 매도돼서는 안되며, 따라서 당쟁이라는 말은 정쟁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붕당 속에서 피어난 정쟁,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정쟁을 이끌기도, 정쟁의 혼란 속에 빠지기도 했던 왕들의 모습과 명예, 의리, 명분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위정자와 선비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왕과 신하, 붕당간에 오고 간 설전들이 조선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논리 정연한 이론과 지식이 뒷받침된 수준 높은 토론이 있었다며 ‘당쟁(黨爭)’으로 폄하하지 말고 ‘정쟁(政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파당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당파싸움은 조선시대보다 지금이 더 치열하고 치사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왜 조선 왕조만이 당파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치부되느냐”며 식민사관 그림자를 걷어내고 조선왕조 당파싸움을 고도의 이론과 대결로 정의한다. 그는 조선왕조의 당파싸움이 당쟁이 아니라 정쟁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하면서, 붕당 속에 피어난 정쟁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비열하거나 치사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 신봉승은 에필로그를 통해 “조선의 정쟁은 버릴 것보다 배울 게 더 많다. 도덕과 논리를 기초로 했던 ‘정쟁’을 당파싸움이라는 ‘당쟁’으로 착각했고, 그 당쟁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무지했던 것인가를 알게 되었으면 내게는 보람 있는 일이겠다.”라고 소망했다. 이 책을 통해 시대를 거슬러 정쟁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훑어보면서, 조선 정치인들이 꿈꾼 탕탕평평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해 봤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