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 시인

간혹 TV앞에 앉을 때가 있다. 내가 채널을 돌려서 눈여겨보는 프로는 광주 MBC에서 방영하는 「얼씨구 학당」이다. 나는 이 프로와 이제는 단단히 정이 들었고 휴일이랍시고 한가한 때에는 이 프로에 붙들리고 만다. 중앙에서 진행하는 내노라하는 스타들의 1급 프로들도 많건만 채널 맞추고 싶은 프로가 바로 「얼씨구 학당」이다.

내가 이 프로에 매료된 것은 그 꾸밈없는 멋과 신바람 나는 진행에 있다. 프로 이름에서도 감지되지만 「얼씨구 학당」은 프로 진행의 전 과정이라고 해봐야 두 세 사람의 진행자와 여타 출연자들이 서로 어울려 웃고 떠들고 하면서 판소리나 민요 몇 구절을 배워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이 「얼씨구 학당」이 진행될 때 그 프로에 부담 없이 빠져드는 것은 질박한 말씨로 진행해가는 진행솜씨 때문이다. 바로 그 진행자는 이 프로에서 여느 진행자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신바람과 재미와 멋을 풀어내고 있다. 특별히 짜여진 어떤 틀 같은 것도 없건만 재주 좋게도 진행자는 그 프로에 출연하는 사람들뿐이 아닌 시청자들에게 절로 어깨춤을 들썩이게 할 만큼 신바람 나는 분위기에 빠지게 만든다.

▲ 김종 시인

언제부턴가 우리의 주위에선 소위 이「신바람」이란 게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기질적으로 신바람의 민족이란 것은 여러 기록으로도 잘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요즈음은 도대체가 그처럼 이어져 내려온 신바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신바람이란 게 뭔가. 길을 가다가 마주친 사람과도 반갑게 손잡고 안부 몇 마디 묻는 일에서부터 세상살이의 경륜을 밝히는 고담준론에 이르기까지 어깨를 들썩이며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면 그 무엇이든 신바람이다. 실지 이쪽 남도지방의 사람들은 소리를 하거나 춤사위를 풀어내면서 신바람을 몸에 익히고 살았었다. 수양버들 가지처럼 낭창거리며 바람을 일으켜야 살맛이 난다고들 했는데 요즘에는 도대체가 이런 낭만적 재미의 판세를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면 우리의 주위사방에서 이 같은 신바람만 사라진 것인가. 아니다.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상대를 불신하고 혐오하고 해코지까지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된 점이다. 무엇이 이 지경에 이르게 했는지는 깊게 따져보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세상사는 일에 재미를 느껴야 돌아가는 판세도 유연해진다. 그런데 도대체가 하드웨어만 덩실하고 신바람의 소프트웨어는 없는, 씁쓸하기가 소태맛 같은 세상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다.

이들 때문에 시계(視界)는 제로 상태인 데다 몇 년째 3류의 정치에 내리막길만을 걷는 경제 앞에 살겠다는 사람이 없다. 상황이 이 같으면 그 누구든 걱정하면서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 작년은 재작년보다 어렵고 금년은 작년보다 더 어려운, 말하자면 끝없는 나락의 그 무서운 내리막길만을 걷고 있다. 한계 짓고 내려가는 저점(低點)이 없다는 얘기다.「될성부른 나무 」란 그 어디에도 만나 볼 수 없고 나라꼴만 고양이 생선가게 지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에서부터 온통 무소불위의 권력에만 취하여 이것저것 손을 대어 헝클어놓고 말았으니 속수무책일 밖에. 그래 우리네가 그토록 소망하던 몇 대에 걸친 이 찬란한 민주정부의 간판을 걸고도 절망에 절망만을 더듬거려야 하는 터이다.

요즘만 해도 벌써 여러 달째 세계 경제가 내리닫이로 죽을 쑤고 있다. 지구가 두 동강이 나도 미국만은 까딱없을 줄 알았는데 그 미국부터가 썩은 집 무너져 내리듯 맥을 못 추고 있다. 예견된 결과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에 맞춘 허언일 뿐 당장 죽어나가는 세계경제의 하강국면을 붙잡아 일으켜 세울 솔로몬적 지혜는 막막한 판국이다. 우리나라야 미국이 재치기만 해도 독감을 앓는 체질인지라 이 난국의 터널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자못 걱정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의 기운으로 가득해지는 계절인데 벌써부터 황사바람에 마스크를 착용해야 거리에 나설 수 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는 참으로 수상한 시절이다.

우리 조상들은「등 다습고 배부른 세상」을 세상살이의 유토피아로 생각했었다. 자리만 펴놓으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를 부르며 서로서로 이마 맞대고 어깨동무하고 흥겹게들 어울렸다. 신바람을 만들고 이웃사랑을 풀어냈다. 생각해 보면 우리만큼 낙천적인 민족, 남 미워할 줄 모르는 민족, 지닌 것 없어도 서로 나누면서 위로할 줄 아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민족의 가슴에서 언제부턴가 신바람의 정서가 절망과 체념의 정서로 바뀌어버린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래 이제는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불신만을 무슨 운명처럼 익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 많고 많던 신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이 불볕나는 시대적 무관심과 불신과 냉소만이 기세 좋게 펄럭이는 세상에서 제백사하고 다시금 일으켜야할 신바람이라는 에너지를 축수기도 하며 생각한다.

나는 이번 주말에도 「얼씨구 학당」을 기다리고 있다. 그 프로에서 불어 닥칠 신바람의 기분 좋은 에너지를 장면장면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슴속을 어깨춤 들썩이는 에너지로 채워서 불볕나는 현실속의 사막과 시련을 넘어서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