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사람사람을 만나고 있네요

                                           김 종 / 시인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새해가 왔어요
물줄기 스미듯 소리없이 왔어요
쌓인 눈 털어내며 손님처럼 왔어요
숨쉬는 울타리가 반짝이게 왔어요
닳아진 구두 뒷축같은 지난 해 보내고 왔어요
시간 시간을 따라 불빛처럼 왔어요

활처럼 긴장하고 시위처럼 날아온 새해
너와 나 어둠 열고 꽃씨같은 희망 움이 트네요
북소리 둥둥둥 웅덩이마다 넘쳐날듯 우거지네요
먼동은 기어이 일출되어 밝아오고
손내밀어 아 불꽃놀이, 희망 한복판이
두팔로 안아주며 배부른 모습이네요

지난 해는 미안했어요
만지고 살피며 꽃피울 겨를이 없었어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서로의 흉터 지우며
해와 달 갈대머리에 올려놓지만
밀어내고 조이던 것들, 볼만해질 거예요
절망을 벗어난 오오랜 강물일 거예요
지구의 중심마다 말뚝처럼 엄지 손가락 꽂아두고

저물지 않는
세상을 눈뜨게 할거예요
자욱한 숲 머리가 편안한 적막을 만드네요
송이송이 꽃들이 부화하는 중
누군가의 상자 열어보게 하네요

아, 세상의 물줄기 이끌고 모이는
저 크나큰 곳간 하나 채우려고
사람사람 자리털고 일어서고 있네요
악몽을 이겨낸 깃발이 오르네요
한솥밥이 노릿노릿 익어가네요

주먹밥 뭉쳐서 아 불이 들어오네요
강물도 흐르면서 붐비고 붐비네요
깻단같은 키큰 산들
걸어나온 희망의 너른 오지랖
만나서 얼싸안고
사람 사람 손잡고 한기를 녹이네요
떫고 시고 쓴 세상의 맛 약사발처럼 돌이키며
우거지며 날아가며 웃음소리 달구네요

김종(金鐘)은 1948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당선(‘76)과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89)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지사대학에 유학했고(‘90) 『장미원』, 『더 먼곳의 그리움』『배중손 생각』 등 8권의 시집과 『전환기의 한국 현대문학사』,『삼별초, 그 황홀한 왕국을 찾아서』(상 · 하) 등 8권의 저서, 그리고 신동아미술제 대상 수상, 광주 · 서울 · 부산 · 대구 등지에서 9차례의 회화작품 개인전을 가졌다. 민족시가 대상, 광주예술문화 대상, 광주시민대상(예술부문) 등을 수상했다.

광주교대, 동신대 국문과에서 강의하며 KBC광주방송시청자위원을 거쳐 同이사, 국제펜클럽 광주위원회장, 광주서구문화원장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