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醉)하면 시을 읊고, 깨면 취(醉)하려 하니’

문평면 백산(白山)마을 백용산(白龍山) 밑에 은둔하면서 시(詩)를 지은 김려(金礪) 용암(龍庵)이라는 정자를 짓고 ‘용암자호’(龍庵自號)‘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隱而不見臥龍庵(은이불견와용암)
誰識林泉有大男(수식임천유대남)
風期未感殷宗夢(풍기미감은종몽)
千日華山學睡?(천일화산학수감)

김려가 위의 시를 제작하자 노안 쌍계정에서 시를 지었던 정언복(鄭彦復), 정언갑(鄭彦甲), 장봉익(張鳳翼), 정언을(鄭彦乙), 홍재대(洪在大), 홍취대(洪就大) 등이 김려의 대한 용암차운(龍庵次韻)을 읊었다.

용암(龍庵)에 누워 이연(怡然)히 웃는 모습
그대는 분명 이 세상 사람이나, 어디에 남아(男兒)이고
높은 안식과 호연은 주장은 시속(時俗)엔 맞지 않아
스스로 이르되 자연의 산수에 취하여 산다고 하네

이 시는 홍재대가 지은 7언절의 용암차운의 내용이다. 속세(俗世)를 등지고 사는 김려의 높은 뜻을 기린 글이다. 홍취대가 지은 용암차운의 내용도 역시 이곳에 은둔하여 시주(詩酒)를 즐기며 태평한 세월을 보내는 김려를 두고 기린 글이다.

대지는 김려을 얻고, 김려는 용암(龍庵)을 얻었는데
그는 자칭(自稱)하여 속세(俗世)를 피한 기남(奇男)이라 하네
취(醉)하면 시을 읊고, 깨면 취(醉)하려 하니
태평한 세상에 길이 단꿈난 즐기네.

김려는 또 을축년 1745년 봄, 옛날에 살았던 금안동을 찾아 쌍계정에서 베풀었던 동상연석(東床宴席)에 참석하여 동장(洞長)을 뵙고 취하여 춤을 추며 시를 읊었던 일이 있다. 그 시가 쌍계정제영으로 남아 있다.

쌍계정(雙溪亭) 이 자리는 고풍(古風)을 따름이니
관현가곡(管絃歌曲)에 즐거움이 한이 없다.
그대 지상선옹(地上仙翁)의 춤을 보니
백일(白日)도 정이 많아 무수(舞袖)를 비춰준다.

이 때 홍담(洪?), 홍윤호(洪胤昊), 정태운(鄭泰運), 홍윤철(洪胤喆), 홍대하(洪大夏) 등이 술자리를 같이 하고 김려의 시에 차운하였는데, 그 중 홍대하가 차운한 쌍계정제영(雙溪亭題詠)은 다음과 같다.

쌍계정(雙溪亭)의 좋은 모임 유풍(遺風)이 남아 있어
날씨도 청화(淸和)하여 경개가 무궁하다.
게다가, 선옹(仙翁)은 흥이 일어 춤을 추니
취한 얼굴엔 젊은 기색 가득하다.

김려에게는 정언복, 홍재대, 정언갑, 홍약한 등과 우정이 두터워 서로 차운작시(次韻作詩)한 글이 적지 않았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