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의 뱃길복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내 고장 현안을 산업화 차원에서 바라보는 일은 그만큼 주인의식이 커지고 있다는 증좌이다. 뱃길복원을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친환경 도시를 조성하고 새로운 영산강 시대를 펼치려는 ‘영산강 프로젝트’는 투명한 가을 물빛처럼 신선감 마저 준다.

영산강을 바라보며 성장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깊은 산 흔들던 소쩍새 울음처럼 저리게 다가온다. 내 기억 속에서 도시는 욕망의 그물로 너와 나를 엮었었다. 허나 강물은 풍경과 사람들의 사연을 따뜻하게 감싸며 흐르고 흘렀다. 그렇게 나직나직한 고향땅 여러 마을을 돌아 느린 진양조의 장단 영산강이 내게 무한한 정취와 영감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 김종 시인

나주는 서울의 종로, 영산강은 한강 나루
 
담양 용소골에서 발원한다는 영산강, 2004년 최초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황룡강, 극락강의 습지를 거치고 350여리 등 굽은 물줄기로 호남평야와 나주평야를 적시며 목포 바다와 만난다. 청동기 시대부터 농경과 해양이 어우러진 영산강 문화권, 남도 사람들의 삶의 모양새가 매양 맛깔스럽듯 판소리의 사설 같은 영산강 허리에는 고인돌만도 2만여 개나 남아있다. 고인돌은 고조선시대의 유적이며 이 시기의 문화는 부족국가인 마한으로 전승된다.

백제와 맞서서 독립적으로 600년 이상을 존속한 마한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옹관을 만들었고 일본에도 문자를 전한 높은 수준의 문화 국가였다. 마한의 옛 땅인 나주는 고려의 왕건과 손을 잡고 국기를 다졌으며 12목의 하나인 어향(御鄕)으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조에 들어서도 목(牧)과 현(縣)을 오르내렸지만 서남해안 전역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 위풍당당한 고을이었다.

“.....오직 흐르는 것만으로도/ 좀더 맑게 흐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세상에 소중한 모든 일들을 이루어 왔다.”는 시인 나해철의 노래처럼 영산강은 가슴 뛰는 시선과 그리운 사람들의 기억을 섞어 슬픔의 바다가 아닌 기쁨의 바다를 향해 흐르는 황홀한 강이다.

나주 반남에 가면 일대의 낮은 구릉(해발 20~30m)에 대형의 고분들이 산재(散在)해 있다. 사적 제76· 77 ·78호로 지정된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고분군이 그들인데, 일제 강점기인 1917-8년에 일본인 야쓰이 세이치(谷井  濟一) 등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고분의 내부시설은 목관이나 석실이 아닌 대형의 ‘옹관(甕棺)’을 사용하였으며 이들 고분들은 나주 반남면을 비롯하여 영암 시종, 함평 월야 등 영산강 하류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반남면 신촌리 9호분에서는 금동관모, 금동신발, 환두대도(둥근 고리에 봉황무늬를 넣어 손잡이 장식을 한 큰 칼), 철기류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유물들이 햇빛을 보았다. 복암리 3호분 또한 옹관묘, 석실묘 등 총41기의 매장시설에서도 중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면서 이 지역에 강력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였다는 추정을 낳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옹관고분’하면 영산강 고대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상징적인 유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리고 나주를 서울의 종로라 하면 영산포는 한강 나루터쯤 될 것이다. 그 시절에는 나주에서 영암, 강진, 목포를 오가려면 이 나루를 건너야 했고 서남해에서 들고 나는 고깃배들도 이곳으로 거슬러 진입했었다. 그중 흑산도에서 들어오는 홍어배들도 적잖았으며 영산포장은 농산물, 해산물 공산품이 한데 모였다 흩어지는 대대적인 교역장이었다. 일제는 영산강 유역에 식민지 도시를 건설하려 하였고 곡물을 내가고 공산품을 하역하는 수탈의 거점으로 욕심냈던 것이다.
 

황시리 젓배가 환상인 듯 다가와
 
선창가에는 불켜질 날을 기다리며 지금도 등대가 서있다. 오색천 나부끼던 황시리 젓배가 환상인 듯 지나간다. 홍어 도소매상이 즐비하고 홍어축제 철이면 파시처럼 부두가 흥청거린다. 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 부두에서 배를 타고 왕인 박사는 일본으로,  최치원 선생은 중국으로 떠났다. 이같은 역사 없이 강이 어찌 저 혼자만 그 많은 노래를 불렀다 하겠는가.

영산강 뱃길 복원, 꿈꾸는 자는 행복하고 꾸는 꿈이라야 현실이 된다. 남도문화의 깊은 속살이 저 강물과 함께 차오르고 흘러갔던 것을. 돈도 벌고 낭만도 물결치는 영산강 물길이 황포돛대 밀고 오르는 해풍처럼 당당하다. 아니, 나주의 곳간을 채우고 채우리라. 바람에 날리는 황포돛대는 영산강의 오래된 미래였다. 영산강의 오래된 미래가 간절한 과거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김 종 / 시 인 (joungh1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