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정(雙溪亭)은 노안면 금안리에 있는 정자로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설재(雪齋) 정가신(鄭可臣)이 창건하였다.

금안동은 원래 정가신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이루어진 마을인데, 그는 쌍계정(雙溪亭)에서 김주정(金周亭)과 문현공(文顯公) 윤보(尹珤)와 함께 이곳에서 도(道)를 딲았다고 하여 이 정자를 세칭(世稱) 삼현당(三賢堂)이라고도 한다.

현장에 보관되어 있는 쌍계정중수록(雙溪亭重修錄) 또는 현판되어 있는 쌍계정중수기(雙溪亭重修記) 등을 보면 이 정자는 수차에 걸쳐 중수되고, 그 과정에서 원형의 모습마저 변형되었다고 하니, 지금의 건물은 조선시대에 중건된 것이다.

조선 세조에서부터 선조에 이르는 사이 보한재(保閒齋) 신숙주(申叔舟), 귀래정(歸來亭) 신말주, 벽오당(碧吾堂) 김건, 홍천영(洪千璟) 등의 제현(諸賢)이 이어서 학문을 구하고 도를 닦았던 곳으로 국내 현사들의 출입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쌍계정(雙溪亭)이 건립된 후 부락민들은 이곳에서 합동으로 뜻을 모아 좌목(座目)과 규약(規約)을 정하고, 고례(古禮)를 본받아 미풍양속을 지키도록 하였으며, 해마다 시를 짓는 날을 정하니 출입 인사들이 몰려들고 계회(契會)와 시회(詩會)의 장소가 되었다.

근래에는 정가신의 후손인 나주정씨, 정서(鄭鋤)의 후손인 하동정씨, 김건(金鍵)의 후손인 서흥(瑞興)김씨, 홍천영의 후손 풍산홍씨 등의 사성(四姓)이 이 정자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 주민들은 사성(四姓)씨가 이곳에서 합의로 마련한 규약을 준수하여 의례질서를 유지해 왔다.

쌍계정(雙溪亭)에는 금안동향약(金安洞鄕約)이라 이를 소중한 필사본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쌍계정중수록(雙溪亭重修錄)에 36수의 쌍계정제영이 실려있다. 그리고 쌍계정 현판에는 사성씨의 쌍계정중수기가 걸려있다.

나주정씨의 정우권, 하동정씨의 정봉채, 서흥김씨의 김종섭, 풍산홍씨의 홍경식 등이 작성한 누정기(樓亭記)가 바로 그것이다.

서흥김씨 김종섭(金鍾燮)이 지은 누정시가 있는 그는 스스로 만향정(晩香亭)을 경영하였는데, 이곳에서 제작한 그의 누정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 집 서쪽에 수칸의 정자를 집어놓니
십년 경영에 오늘은 더욱 맑다.
마을엔 서양이 비치고 둘러있는 산은 우뚝한데
비갠 뒤 난간에 비친 햇빛, 그 위에 흰구름이 인다.
청염검약(淸廉儉約)은 선대(先代)부터 지켜온 가규(家規)더니
세상(世上)일 바빠도 득명(得名)은 서둘지 않네.
가을의 한화(寒花) 즐기는 사이 추색(秋色)은 짙어만 가니
아희야 국화 뜯어 오렴, 술잔 위에 뛰어 보자.

김종섭은 정자 앞에 여러 가지 꽃을 심었는데, 그 중 국화를 사랑하였다. 늦가을까지 향기가득한 국화의 만향(晩香)을 기리어 정자 이름도 만향정이라 했다.

자신이 이르되 정자 앞에 아름다운 꽃이 사시(四時) 피었으되, 늦가을까지 향기 지극한 국화를 유달리 좋아하여 그 만향으로 편액을 삼았다.

난(蘭)은 향기(香氣)가 뛰어나지만 늦가을까지 지속할 수 없다.
송백은 늦게까지 지속하여 불변하지만 향기는 보잘것 없다.
송백의 정조(貞操)와 난의 향기를 겸함은 오직 국화뿐이다.

김종섭이 국화를 사랑했던 이유이다. 위에 든 만향정제영의 결구에는 이같은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