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더 이상 잡아둘 실낱이 없다
아무리 끌어당겨도 떨어져나가는 팔다리들
시절이 오면 살빛이 바뀌고
살껍질이 떨어져나가듯
한 점 미련도 없이 흘러가야 된다는 걸
안다는 듯이
가을들녘은 텅텅 비워져가고 있다

옮겨 앉은 안마당에서
일평생의 땀방울을 털어내는 콩단들
추안거(秋安居)에라도 들었다는 것일까
사정없는 도리깨질에도
가벼운 죽비에 선잠에서 깨어나듯
머리를 서너 번 흔들고 만다

생목숨을 저리 바짝 말리기까지
빙초산에 데인 것처럼
몸부림치는 대목 있었으리라
고실라져야 실한 씨앗을 남길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웅숭그린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으리라
죽음 같은 갈증에도
뿌리가 숟가락에 받쳐 든
한 방울의 물도 이를 앙다물고 내쳤으리라

이미 살아서 관음이 된 푸나무들은
태초부터 바람이었다는 듯
제 가진 것을 송두리째 풍장에 내맡기고 있다

관음의 미소가 사리처럼 영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