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첫날밤처럼 수줍은 회색구름에 기대어
낯선 감각으로 더듬어 내려가니
삼복콩밭 김 메느라 얼씨구 돋아난
땀띠의 촉감이 낟알처럼 서걱거린다
담담하던 손길이 뭉클 뜨거워지는데,
생의 반나절을 남의 동네 먼 곳만 서성였다
늘 곁에 있는 내 것이라고
눈길도 주지 않고 소박 놓았던
내 여자, 영산강
고독에 지친 등대엔 적막한 어둠만 남아
햇새벽처럼 환하던 몸은 해거름처럼 저물어간다
소통이 멈춘 사랑은 제 빛과 향기를 지우고
무채색이 되어 한 치의 마음도 내비치지 않았다
잔뜩 웅숭그린 파도가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고
급기야 소낙비 같은 눈물에
오장이 뒤집어지고 한숨 같은 강풍이 휘몰아친다
들썩이는 그녀를 안고 기도하듯이 토닥이니
구름 너머 햇살에 볼우물이 파이고, 깊이
가두었던 속내가 싸목싸목 미운 나에게로 열렸다
눈물이 어룽질 때마다 한 뼘씩 웃자란 갈대는
수런대는 바람을 조율하고
차곡차곡 개켜두었던 주름진 사연
창공에 펄쩍펄쩍 펼쳐내는 숭어를 좇아
검은 해오라기 스치듯 짝을 부른다
고흔 가르마처럼 달려오는 내 여자를 소박 놓고
나는 내 안에 어떤 허상을 그리워했던 것인가
무릎을 베고 포로롱 풋잠에 들자
그녀는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영산강탐사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