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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고령이 된 옛 동지가 바치는 이름 없는 묘비명‘
“이 책은 패잔의 기록이다. 그러나 위대한 패잔의 기록이다. 현대사의 격변기에 그 생을 내 맡겨 당당히 싸우다가 괴멸한 음지의 기록이다.
승자의 역사, 양지의 역사만이 판을 치는 편견 속에서 ‘이런 역사도 있었다’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정관호는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원산 교원대 교원으로 1950년 7월 전쟁에 동원돼 전남 강진에 파견되어 현지 교사들을
상대로 강의. 그 해 9월 인민군의 전면후퇴 때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 대열에 가담.
「전남노동신문」주필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54년 4월 백운산에서 체포돼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7년 복역 뒤 61년 출소한 빨치산. 정씨가
말한 ‘이 책’이 《전남 유격투쟁사》다.
그는 책표지 글에서, 한국전쟁 59년!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고, 생존을 위해서 싸웠고, 그 본디
사명을 다하다가 끝내는 괴멸되었다.”는 것을 나는 실상 그대로 알리고 싶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싸우다가, 어떻게 죽어갔는가 하는 것을 있었던 그대로 기록으로서 남겨두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들의 삶 자체가 처절한 그것이었음으로 있었던 그대로 쓰면 될 일이었다.
그들의 한결 같았던 지향은 겨레의 완전독립이요, 억압받는 자의 자주권 회복이었다. 그것은 인류 공통의 욕구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들의 잔영을 좇았다. 이제는 화석으로 굳어진 그 발자국을 더듬어 남도 천지를 누비고 다녔다.
묻혀버린 것들을 캐내고 조각조각 모았다.
지금의 나는 그들을 역성들고 있다는 지적 앞에서 털끝만큼도 부끄럽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노라고 강변할 것도 없다. 나와 함께
있었던 그 형제들의 이야기요, 새파란 젊음으로 산화한 자매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평탄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또 ‘우리’ 당대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살아남은 몸으로 그들에게 진 빚을 갚고자 했다. 내 능력이
모자라서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전하지 못할까 저어할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조국해방전쟁 전후 시기의 조선로동당 활동 약사(略史)는 6.25전쟁 시기
전남도당산하 당원과 대중전사들이 어떻게 싸웠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2부전남 유격투쟁 약지(略地)에는 전라남도 지역에서 전개되었거나, 전남소속 부대들이 참가했던 무장유격투쟁 성과를
날짜순, 조목별로 밝혀 놓았다.
제3부인명록에서는 6.25전쟁 전후시기에 전라남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빨치산 전사들을 주축으로 일부 애국인사들의 이름을
밝혀두고 있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는 대로 6,25 전후시기에 전라남도 일원에서 전개되었던 무장유격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단순히 그때 그 역사를 단순히 재현하고 있지 않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그때 그 역사는 기억의 저편에 있다.
저자는 젊은 빨치산 시절에는 투쟁을 위해 발로 뛰었겠지만 이번에는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팔순 노구를 이끌고 발품을 팔았다.
정관호는 “빨치산 전력을 가진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야 했고, 현지 주민들을 만나서 그들이 겪었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을 탐문해야
했으며, 이 고을과 저 고을, 이 산 저 산의 전적지를 답사해야 했다.
그뿐 아니다. 당시 발간된 공기관의 발행물과 신문들,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가 갖고 있는 자료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문건사본 등,
시간과 경비가 허락하는 대로 섭렵하고 분석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태의 〈남부군〉은 빨치산을 비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지만, 그 인간은 극히 나약하고,
감상주의적이며, 빨치산 활동이 잘못되었다고 반성하는 전향자들이 중심”이었고,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 빨치산들의 생각을 비교적 충실히
담아냈으나 활동전모를 밝힐 “체계적인 정사(正史)는 나오지 않았다”고 썼다.
말하자면 한 교수는 정관호의 《전남 유격투쟁사》를 소설과는 또 다른 역사 연구서, 곧 ‘최초의 빨치산정사’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 양쪽에서 버림받고 이름 모를 산하에서 죽어간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빨치산들의 명복을 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