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먼 하늘 적송 한 그루 개망초밭에 소풍 왔었네
소나무의 붉은 눈에는 개망초꽃
하얀 빛깔이 너무 고왔네
그러나 소나무는 금세 알았네
그 빛이 여름날 뙤약볕을 퍼 올린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눈물을
개망초들이 꽃으로 피워 올리고 있다는 걸
풀꽃의 눈물을 읽어버린 소나무는
심장으로 만든 바늘에
핏줄을 꼬아 만든 실을 꿰어
한땀한땀 고통을 누비듯 수를 놓았네
서희도 길상이도 김약국의 딸들도
소나무의 수틀에서 개망초꽃으로 부활하였네
소나무의 핏줄을 돌아 나온 눈물들은
그 눈물을 만져본 가슴언저리에
옹이처럼 단단하게 박혀
송홧가루처럼 결코 지워지질 않았네
소나무는 어머니의 태몽처럼 하얀 용이 되어
캄캄하도록 막막한 풀꽃의 에움길을
하얗게 툭 터진 한길로 돌려놓고 싶었을까
소나무의 영혼이 자유롭게 풀리던 날
아무리 허름한 개망초일지라도
일생에 하루쯤은 흐드러질 날 있다는 듯
온 산하가 하얗게 수놓인 수틀 같네
툭 터진 한길을 보여주고 싶은
순한 꽃눈물들이 뚝뚝 돋아나
하얀 깃털 같은 날개옷을 짓네
솟아오르는 듯 적송의 불타는 용트림
돌아가는가, 개망초밭 저 눈물 젖은 소나무.
(오대산 월정사 ‘박경리선생 49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