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통해 햇볕정책 포함한 대북 관련 비화 공개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을 거쳐 외교안보통일특보를 지낸 임둥원 세종재단 이사장 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이 회고록 《피스 메이커》를 펴냈다.

임동원씨 만큼 자신에 대한 기록이 탈냉전의 역사에 대한 기록과 겹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남쪽에서 유일하게 남북고위급회담의 전 과정에 협상대표로 참여해 92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만들어내는 산파역을 맡았다.

역사적 전환점이었던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신으로 또 하나의 주역이었다. 그러기에 이 책에는 그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들, 그만이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기술되어 있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그는 “자신이 직접 참여하여 경험한 사실을 일차 자료를 활용해 기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남북관계 20년’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기록이다. 회고록이지만 자신에 대한 글이 아닌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을 두고 그가 20여 년 동안 침묵했던 입을 열고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피스 키퍼’에서 ‘피스 메이커’로 살아온 그의 육성이 관심을 모은다.

‘한반도 냉전 해체론의 설계자’로 불리는 임 이사장은 이 책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및 정상회담 성사전후의 비사. 그리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특사로서 방북, 김 위원장과 김용순 대남담당비서 등과 한반도 현안에 대해 격론한 내용을 가감 없이 기술해 사료적 가치도 높다는 평가다.

임 이사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 남북 핫라인 개설이 김대중 - 김정일 간에 극적으로 합의되어 개설됐고, 2002년 서해교전 등 남북 간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 등을 관리하는 창구로 활용됐음을 첫 공개했다.

서해교전 직후 북측은 핫라인을 통해 “아랫사람들끼리 우발적으로 발생시킨 사건이며 유감으로 생각 한다”고 해명했고, 남측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를 보장하라”고 회신했다는 것.

임 이사장은 “양 정상간의 비상 연락먕은 국민의 정부 마지막 날까지 유지되면서 남북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핫라인 개설이야말로 정상회담 최대의 성과중 하나라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회고록은 남북 화해협력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데 있어서 국내외의 저항과 반발을 극복하기 위하여 얼마나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어야 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변화를 거부하는 북한과 국내외의 냉전적 수구보수 세력의 저항과 방해책동에 단호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한편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과 고농축우라늄계획 의혹 등과 같은 미국 네오콘의 정보과장, 왜곡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도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국제냉전이 종식된 지난 20년 간,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스 키퍼’에서 ‘피스 메이커’로 부단히 활동해온 임동원 전 통일부 장과의 기록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긴장해소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해온 대한민국 정부의 다큐멘터리다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회고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분단극복의 탈냉전과 통일을 위한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표이자 자산의 하나가 될 것이다.

임 이사장은 DJ와의 역사적 결합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 더구나 오랫동안 야당지도자였던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 거부해왔으나 1995년 1월23일 DJ와 오찬을 겸한 2시간 대화는 나의 운명을 바꿔 놓는 결정적 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인생의 전반은 공산주의에 맞서 자주국방을 추구하는 ‘피스키퍼’로, 인생의 후반은 남북의 화해협력을 통해 통일을 준비하고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가는 ‘피스메이커’로 살아온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현재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