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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8.바다를 지키는 도저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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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승인 2008.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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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파총관의 심문이 끝나고

최부가 과거에 합격했던 때는 성종8년(1477년)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서 학문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5년 후에는 문과 을과에 일등으로 합격했으며 그런 다음 벼슬길에 들어섰다.

교서관 저작 박사, 군자감 주부,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홍문관 부수찬을 역임했다. 그 다음 문과 중시 을과에 또다시 합격(1486년)하여 홍문관 부교리, 용양위 사과 부사직을 지냈다.

제주 추쇄경차관으로 외직근무를 할 때는 같은 고향의 종자들을 데리고 갔는데 그들은 광주목리의 정보, 화순현리의 김중, 나주목리의 손효자, 나주성안의 청암 역리 최거이산 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의 뱃사람들로 이들은 능력 있는 마도로스로서 거의 다 부셔져 버린 배를 고치고 수리하며 물을 퍼내는 일을 해오면서 끝까지 배를 지켜 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두 43명이며 일행이 타고 온 배는 큰 배 한척이었으며 돛대, 돛, 키 등은 바람을 만나 항해 첫날 잃어버렸고 다시 배안에서 임시조치로 만든 노와 돛은 해상에서 도적을 만나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고 말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은 대부분 바다에서 풍랑 속에 떠내려가고 말았으며 인신, 마패, 사모, 각대 등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으며 문서로는 중시방록과 책등이라고 말했다. 가지고 있는 무기로 활과 칼이 하나씩 있고 각자가 입을 옷가지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고 했다.

파총관은 곧 인신 등의 물건을 꺼내서 확인했다.

“당신네 나라 땅의 크기는 어떠하며 부와 주는 몇 군데나 되는가? 군량은 얼마나 되며 소산물의 종류, 읽고 있는 시서 중에서 어느 경전을 존중하는가? 또 의관과 예악 등은 어느 제도를 따르고 있는가를 낱낱이 공술하라.”

“조선의 강토는 무려 수 천리에 달하며 8개의 도가 있습니다. 이에 소속된 주, 부, 군, 현이 3백여 개이며 소산물로는 인재(人材), 오곡, 말, 소, 닭, 개 등이 있습니다. 경전으로는 사서오경을 존중하고 있으며 의관과 예악은 한결같이 중국 제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군량에 대해서는 나는 유신(儒臣)이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당신네 나라는 일본과 유구, 고려와 서로 통하고 있는가?”

“일본과 유구는 동남 대해(大海)에 있는데 서로 거리가 멀어 통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려는 망하고 없어졌고 그 대신 조선이 뒤를 이었습니다.”

“당신네 나라도 우리 조정에 조공을 하는가?”

“우리나라는 해마다 중국 황제의 생일이나 정월 초하룻날에 조공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어떤 법도와 연호를 쓰고 있소?”

“연호와 법도는 명나라에 준하고 있습니다.”

파총관의 기나긴 심문이 끝났다.

“당신네 나라와 대명은 여러 해 동안 조공과 함께 군신간의 의리가 있는 나라로 당신들이 억지로 명나라의 변경을 침범한 것이 아님을 알았소. 이제부터 적절히 예우할 것인즉 안심해도 좋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조치할 것이오. 먼저 북경으로 호송할 터이니 서둘러 채비를 갖추도록 하시오. 시간을 끌지 말고 행장에 빠짐이 없도록 하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 차와 과일이 나왔다. 중국에서는 어디에서든지 차가 있었다. 서쪽의 사막지대에서 불어오는 황토바람과 모래를 마시는 그들에게 따끈한 차가 유일한 해결책으로 즐겨 차를 마셨던 것이다. 상중의 몸으로서 술을 마실 수 없는 최부로서는 차가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이제는 사는구나.’


살았다는 안도감에 기뻐하는 최부 일행

설마하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고비를 넘긴 최부는 고마운 마음으로 시를 지어 사례를 하고 절을 드린 다음 감사의 뜻을 전하려 하자 파총관은 사양하며 절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래도 최부가 절을 하자 얼떨결에 그도 일어나 답례를 해주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무사히 넘긴 최부의 지혜로움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어느새 이 소식은 다른 일행에게도 전달되었다.  귀국길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지자 우울한 채 움츠러들었던 일행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와-아, 이제는 살았다.”

모든 일행이 마당으로 뛰어나와 춤을 추고 만세를 부르며 기뻐 날뛰었다. 호송군들은 옷을 벗어 하늘로 날리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배를 버리고 육로를 통해 그것도 북경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간다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룻밤을 자고나자 어제의 파총관이 다시 최부를 불러 말했다.

“어제의 공술서 가운데 하산(下山)에서 도적을 만났다는 것과 선암리에서 매질을 당했다는 내용을 삭제하려하니 공술서를 다시 써 달라.”

영문을 몰라 하는 최부를 곁에 서 있던 설민이 보충설명을 했다.

“어제 당신이 썼던 공술서는 황제까지 보고를 올리게 되는데 황제는 간결하고 간략한 글을 읽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파총관께서는 번잡한 내용보다는 간략한 글로 고쳐 달라고 하는 것이오. 다른 뜻은 없으니 그리 아시오.”

의아한 생각이 든 최부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공술서는 사실그대로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사 번잡한 점이 있다하더라도 잘못은 아니잖소? 도적을 만난 부분을 삭제할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은 더 자세히 써야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날강도를 만나 고생한 부분을 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군요.”

최부의 강력한 반발에 설민은 슬며시 글씨를 써서 내보였다.

“새 황제가 즉위했는데 법령이 매우 엄격하오. 만약 당신이 쓴 공술서를 보면 황제는 틀림없이 도적이 성행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며 그 죄는 변장에게 돌아가게 되오. 장차 이렇게 되면 작은 일이 아니오. 불똥이 퍼지면 어디로 뛸지 모른단 말이오. 당신도 하루 빨리 조선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닙니까? 불미스런 일이 생길까봐 그렇게 하는 것이오.”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 하군요.”

최부는 붓을 들어 그들의 요구대로 다시 써주었다.

설민이 말했다.

“당신은 군자감 주부를 지냈다고 했으면서 어째서 군량의 수를 모른다 하였소?”

“한달도 안돼 딴 곳으로 전출되어 갔기 때문입니다.”

“표류 과정 중에 굶은 날이 며칠이나 되오?”

“초사흘에 출항한 그날부터 열하루까지 무려 아흐레간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나라 임금의 성과 휘는 무엇이오?”

“효자는 차마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신하된 자가 국왕의 이름을 경솔하게 아무렇게나 말한단 말입니까?”

설민이 최부와 주고받은 내용을 파총관에게 보고했다. 자세하게 읽어본 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내일 관리를 차출하여 당신일행을 호송할 것이니 출발준비를 서둘도록 하라.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가져오면 전에 잃어버린 것들을 모두 찾아내 돌려주도록 하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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