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관제개혁으로 향리층의 상당수가 관직을 잃었을 뿐 아니라 개화파 관리, 즉 안종수의 수탈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안종수는 나주에서 부민富民에 대한 침탈을 자행하여 8만냥이나 되는 거액의 뇌물을 부정한 방법으로 거둬들였다.

이 같은 수탈은 향리층이 의병봉기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짐작된다. 여기에 지방제도 개편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안종수 등 개화파 관료와 이에 반발하는 보수적인 양반 유생 및 향리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이 무렵 민비시해사건이 일어나고 12월에 안종수가 나주군수로 발령되었다. 그리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안종수는 먼저 자기 머리를 깎고 여순검呂巡檢과 서로 합세해 군용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병졸들과 직원들의 머리를 가혹하게 삭발하였다. 그리고 향교 유림들의 머리를 깎으려 향교로 향했다.

 단발령은 1895년 일본의 지원으로 들어선 김홍집 내각이 11월 15일 고종의 조칙으로 단발령을 실시한다고 선포하였다. 당시 내세운 단발의 이유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유교윤리가 뿌리내려 있던 조선사회에서 일반 백성들이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것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자 전국적으로 극심한 반발에 부닥치게 되었다.

 아마도 안종수는 전국에서 제일 시범 모델로 삼기 위해 향교 유림들의 머리를 일제히 깎아 버리면 그 나머지는 알아서 깎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때 오재수와 이병수, 송종희 세 사람이 향교의 교임을 맡고 있었다.

 안종수가 향교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오재수가 송종희에게 말하기를...

“내가 머리를 깎으면 자네도 깎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네는 제일 연소하기에 먼저 깎을 걱정은 없을 것이니 나와 이병수는 당장 피신해 가지고 그들의 칼날을 면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어둠을 틈타 오재수와 이병수는 다음날 경현동 나영집의 집에 가서 유숙하게 되었다.

 이날밤 정석진이 찾아왔다. 정석진은 이미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공으로 해남현감으로 제수되었는데, 안종수에게 미움을 사서 그 또한 삭발을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향교 교임들이 나영집의 집에서 유숙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 온 것이다.

 “저 역적놈들을 통렬히 꾸짖고 아무리 머리는 깎았지만 죄는 속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지사들은 차라리 목을 베어갈지라도 의리상 머리는 깎지 말자”

 그들은 서로 눈물을 흘리며 화로 가에 둘러앉아서 날이 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맹세한 뒤 헤어졌다. 안종수의 강력한 단발령 추진은 향리와 보수적인 유생 계층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단발령은 1896년 2월 11일 러시아 공사와 공모해 고종이 궁궐을 벗어나 지금의 서울특별시 정동(貞洞)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간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김홍집 친일 내각이 무너지고 단발령 또한 철회되었다.

1년 만인 1897년 2월 20일 고종이 다시 환궁하기까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던 1년 동안 러시아를 선두로 한 구미 열강은 왕실을 보호해준다는 대가로 각종 경제적 이권들을 약탈해갔다.

 1896년 정월 초하루 아침.

 향교에 분향을 드리고 있는데, 안종수가 찾아왔다. 안종수가 소 한 마리와 여러 가지 제수를 관에서 대주었기 때문에 부득이 그를 정월 초하루 향교 분향에 초청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제가 삭발을 독촉했던 것이 본의 아니게 향교 내의 모든 유림들에게 과오를 범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죄송한 마음을 어디에 비유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단발령이 중지되었으니 개의치 마십시오”

 이 무렵 장성 참봉 기우만이 의병을 모집하여 나주에 통첩을 보내왔다. 나주의병의 결성은 장성의병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호남지방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기우만은 1895년 겨울 장성에서 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기우만의 격문이 나주향교에 1896년 음력 정월 29일에 도착하였고 양반 유생과 향리들이 적극 호응하였다. 기우만의 통문에는 개화파를 처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군주가 별관 (여기서 별관은 러시아 공사관을 말함.) 으로 옮겨 버렸으니 분개하고 차라리 죽고 싶을 뿐이며, -생략- 부강하게 해준다는 것은 바로 임금을 속이는 좀도둑 같은 말이고 개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패륜을 낳게 하는 싹이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가버리자 김홍집 친일내각이 무너지고, 지금까지 실권을 장악했던 친일 개화파를 처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우만의 통문 또한 개화파 처단을 골자로 호남 곳곳에 통문을 보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