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최소’를 위한 시대와의 분투

함석헌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이문영(81) 고려대 명예교수가 1978년 펴낸 수필집 ‘겁 많은 자의 용기’와 같은 제목으로 자서전 《겁 많은 자의 용기》를 내 놓았다.

《겁 많은 자의 용기》는 청교도 정신으로 80여 평생을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 행정학자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세 번 교수직을 해직 당하고 5년 넘게 옥중 경험을 한 지성인 이문영(고려대 명예교수)의 삶의 고백을 담은 책이다.

▲ 겁많은자의 용기, 이문영 지음

1973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과 1975년 YH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으로 9년6개월 동안 해직상태에 있었고, 5년 동안 영어(囹圄)생활을 한 ‘민주투사’였지만 그는 겁이 많았다고 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허약하고 얼뜨고 눈이 크고 겁이 많았고 시험지만 보면 벌벌 떨었고”(-p52), 교수 시절에는 “전체 교수회의 때 벌벌 떨면서 발언했지만, 발언하고 나와서 내 발언을 동료 교수들에게 다시 말하거나 내 발언에 동의와 지지를 구하지 않고 곧바로 연구실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p62)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행정학자이자 고뇌하는 종교가인 저자는 ‘정도를 넘어선 최대’가 아니라,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최소’를 고집하는 ‘최소주의자’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한 자서전 《겁 많은 자의 용기》에 붙은 부제도 ‘지켜야 할 최소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지켜야 할 최소를 지킨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을 버리는 일은 자신을 타락케 하고, 공무원이 지켜야 할 최소를 버리는 것은 나라를 타락케 한다.”는 지적이다.

어렸을 때 장남으로서 동생을 때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최소였다면, 3·1민주구국선언(1976)으로 투옥됐던 추운 겨울날엔 몸 녹일 수 있는 더운 물 한 모금이 최소였다고 그는 말한다.

최소를 지키는 그의 자세는 그에게 정당성 없는 현실정치에 부딪히게 하는 동력이자 행정학 이론을 성찰케 하는 거울로 작용해왔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존재의 부름에 바르게 응답하고자 하며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삶을 담고 있는 자서전이자, 행정학자로서 40여 년 탐구해온 사유를 담은 행정철학서이며, 권위와 폭력에 저항해온 기독교인의 신앙 고백서라 할 수 있다.

한국현대사와 민주화의 산 기록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오늘의 그를 만든 많은 사람들, 그의 아버지 이용사. 아내이며 동지였던 김석중, 배선표목사, 함석헌 선생, 공자, 맹자, 원효, 율곡, 마르틴 루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자서전의 제목 《겁 많은 자의 용기》는 원래 용감하고 호기로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중요한 고비마다 필요한 말을 용기를 내어 “벌벌 떨면서”하는 이 교수가 1978년 수필집을 출간할 당시 수필집 제목으로 한완상 교수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소정 이문영은 회고록 말미에서 “나는 93세까지 살 작정”이라고 공언했다. 처음 구속됐을 때가 46세였으니, 꼭 그만큼의 삶을 살고 한해 더 살면 93세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12년, 그동안 그는 세 가기 질문을 놓고 끊임없이 자문할 생각이라고 한다. ‘너는 왜 마지막을 중요시하는가?’ ‘너는 어떠한 죽음을 가장 의미 있는 죽음으로 보는가?’ 너는 왜 책을 쓰다가 죽고 싶은가?‘

“책을 쓰다 죽고 싶다”는 이 교수는 죽기 전에 쓰고 싶은 책이라는 《새 문명에서의 공직자》의 서문을 미리 써 이 책의 후기를 대신했다. 그리고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와 신문기사, 작성에 참여한 선언문 등 문서 자료들로 부록으로 덧붙였다.

꼭 필요한 한마디로 어두운 시대를 헤쳐나간 이문영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듯싶다.

이철웅 편집국장/njt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