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무릅쓰고 산 속의 밀림사이를 뚫고 재빨리 고개를 넘었다. 감시하는 배들의 시선이 사라지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되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불안했지만 부딪쳐보는 길밖에 도리가 없었다.

고갯길은 숲 속에 있어서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고개를 넘자 양편에 돌담을 쌓은 것처럼 돌이 많은 산길이 나왔다.

행여나 잡히면 해코지를 당하거나 폭력을 당할까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면서 걸었다. 길만 보면서 나가기를 계속했다.

사오리쯤 갔을까 산 아래에 동네가 보였다. 다행이 여기까지 오는 일행 중에 낙오자는 없었다. 모두가 앉아 쉬는 동안에 최부는 그를 따르는 배리와 군인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했다.

 “우리들은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네. 한배를 타며 목숨을 지켜온 사이로 부모형제와 같은 돈독한 사이가 되었네. 서로 돕고 의지해야만 희생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네. 이제 모두에게 부탁하겠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서로 의지하고 도와서 살아난 것이네. 재난을 당했을 때 서로 돕고 한 숟갈의 밥이라도 서로 나누어 먹고 아프면 서로 의지하면서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이네.”

약속이라도 하듯 모두가 동시에 대답했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최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조선은 원래가 예의지국이 아니던가, 비록 이렇게 표해(漂海)되어 궁색하고 황망하다 하더라도 예의와 법도를 살려 위엄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네. 그리고 앞으로 어디에서든지 배리 등은 나에게 꿇어앉고 군인들도 배리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해야 할 것이네. 마을이나 성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군중사이에서도 반드시 예를 올리는 등 절대로 방자한 행동으로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네.”
  “예 잘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단단히 주의를 하고 난 다음 다시 걷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걷자 제법 여러 호가 모여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러 모여들었다.

난파선에서 나온 자들이라 꼬락서니가 이상하고 차림새도 묘하게 보였던지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최부와 일행들은 마을사람들을 볼 때마다 양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 공손하게 읍을 하자 그 사람들도 모두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답례를 했다.

그들 중에 용모가 뛰어난 두 사람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보다 엄숙한 얼굴인 그는 최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그들은 우리일행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선인이 무슨 연유로 중국 땅에 들어오셨소? 혹시 그대들은 도둑이요? 아니면 조공을 받치러온 사람들이요? 그렇지 않으면 바다에 빠져 표류해온 사람들이요? 자세히 써서 말하면 돌아가게 해줄 것이요.”

경차관 최부가 나서서 말했다.

“나는 조선국의 신하로 왕명을 받들고 섬에 가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부친상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가던 중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바닷가에 닿게 되었습니다. 배를 버린 다음 무작정 뭍에 올라 인가가 있기에 찾아온 것입니다. 딱한 저희들의 형편을 살펴주시고 관가에 알려 죽어 가는 목숨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들의 무엇을 보고 난파당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끌려가는 최부 일행

  최부는 등에 진 보따리를 풀었다. 인신과 관대, 문서 등을 조선국왕의 신표로 그들 앞에 제시했다. 그것을 살펴본 두 사람은 최부 앞에 진무와 배리 등이 줄을 지어 무릎을 꿇고 군인들 역시 질서 있게 부복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선이 동방의 예의지국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항이었소만 정말 소문대로 질서가 바르군요.”

 그들은 즉시 미음과 차, 술 따위를 가져와 실컷 먹게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차는 넉넉해서 양껏 먹게 했다. 중국이 차의 나라라는 말이 실감났다. 그런 다음 동네 앞에 있는 커다란 불당을 열어제치더니 그곳에 들어가 마음 편하게 쉬도록 했다.

  최부 일행은 불당으로 들어갔다. 젖은 옷을 빨거나 말려야 하는데 벗은 다음에 입고 기다릴 옷이 없었다. 단벌뿐인 옷은 입은 체 말려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바람에 옷이 말라 고실 해졌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옷을 말리면서 터진 곳은 바늘로 꿰매며 입고 있던 꾀죄죄한 옷을 말쑥하게 손질했다. 땟국을 빼고 광칠을 한 것이다.

거지도 상거지 꼴의 인물들이 번듯하게 다듬어져 나왔다. 얼마쯤 지나자 그들은 밥을 지어 가지고 왔다. 인심 좋은 중국인의 표본이다. 그들은 최부 일행을 독촉했다. 이곳을 떠났으면 좋을 양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자, 이제 모두 떠날 채비를 서두르세요.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가면 됩니까?”
  “넉넉잡아 2리쯤 가면 될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한시라도 바삐 이곳을 떠나보내고자 한 그들이 고의적으로 둘러 붙인 거짓말이었다. 최부가 그곳의 지명을 물었더니 서리당(西里堂)이라고 했다. 피로에 지친 최부가 다시 말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길바닥이 진창으로 변했습니다. 날도 어두워 저물었는데 어떻게 초행길을 걸 수 있겠습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가까운 거리니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오.”

  어쩔 수 없는 최부는 일행을 이끌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최부 일행을 감싸듯 길 가운데 두고 감시하며 가는 그들의 손에는 무기와 몽둥이, 막대기들이 쥐어져 있었다. 일촉즉발의 살벌한 분위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북과 징을 요란하게 두들기며 내쫓듯 겁을 주기도 했다. 시퍼런 검을 쥐고 휘두르기도 했다. 큰 소리를 질러대며 날뛰면서 전후좌우를 둘러쌌다. 소란한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을 하면서 일행을 에워싸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차례대로 나온 사람들이 일행을 협박위협하며 가게 했다. 살벌한 분위기가 무겁게 짓누른다. 찍소리도 못한 최부 일행의 꼬락서니가 비참하다.

  발바닥에 달라붙는 흙이 덩어리지며 점점 커지면 발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한발자국을 떼기도 어렵게 한다.

쉴만한 곳도 없고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은 어디쯤에 장애물이 있는지 전혀 몰라서 힘들고 어려운 고역이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중앙에서 높은 벼슬을 한 다음 지금은 고향마을로 돌아와 한가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는 풍채 좋은 선비를 만났다. 그 사람은 왕을원(王乙源)이라고 했다.

최부 일행이 밤이 새도록 한참도 쉬지도 못하고 끌려가는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본 그는 인솔자에게 간청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