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심 좋은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21〉에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로 투고한 글을 모은 책이다.

총 4권으로 각 권은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으나, 4권 자체가 일정한 시리즈를 이루는 것은 아니고, '한겨레21'에 투고한 시기에 따라 4권이 분류된 것이다.

주로 다루는 내용은 보수와 진보 논쟁, 박정희, 전두환 정권문제, 반공주의문제, 병영국가문제 등으로, 주로 사회민주주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 한홍구(지은이)

한홍구라는 개인이 서 있는 정치적 포지션이나, 이 글이 원래 연재되었던 매체인 '한겨레21'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생각했을 때 이 책이 다분히 좌파 진보진영에 의한 역사서임은 읽기 전에도 짐작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예상가능한' 정도의 좌파 역사서가 아니다.

그동안 누군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삭제되거나 왜곡된 역사에 대한 증언이며,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행한 범죄에 대한 고발이다. 가려진 펙트의 충격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글 어디 하나에도 진실의 목소리가 아닌 곳이 없다.

현대사를 다루었던 책 중에 전에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현대사 산책〉이라는 시리즈물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4권으로 출간된 '대한민국사' 또한 그 재미와 흥분이 그에 못지 않았다.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이 편년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한 교수의 대한민국사史는 기전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그 서술 방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내용이 주는 감동의 차이 또한 확연히 다르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청산되지 못한 우리 현대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대한제국 말기, 혁명에 의한 왕조교체가 아닌 조국 자체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양반지배계층과, 해방 이후 10여 년 동안 빨갱이 타도를 외치며 죄 없는 민간인을 수도 없이 학살했던 살인자들, 그리고 광주에서 수 천명의 시민을 총칼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던 신군부세력까지, 어는 한 경우라도 제대로 평가되고 단죄된 것이 없다며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안타깝고 속상해 한다. 더욱이 이제는 단죄는커녕 제대로 된 평가조차 불가능해 지면서 우리 현대사가 왜곡·변절됨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논객인 한 교수는 젊은 독자층을 중심으로 탄탄한 고정 애독자 층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논객답게 굴절된 한국사에 일침을 가하여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하지만 통렬한 비판 속에서도 역사학자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다. 또한 그 한국사에 대한 내용 곳곳에 사실이 빼곡이 들어가 있어서 매우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간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의 뒷 이야기들을 이야기 해주며 무지를 일깨워 준다.

친일파, 이승만, 박정희, 김일성, 군대, 학교, 월남전, 간첩, 수구와 진보, 미국-미군, 국보법 등등…한국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그러나 죽 감춰져온 문제들을 저자는 거침없이 내보인다. 간혹 역사서라고 하기에는 저자 개인의 감정과 경험이 너무나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평을 듣고도 있지만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그 부분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한국현대사 갖고 있는 이 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한국전쟁의 학살에서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 5·16군사반란과 유신의 동토를 녹이고, 광주학살의 절망과 슬픔을 딛고 여기까지 온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더 어렵던 시절을 돌이키며 신발을 고쳐 신는다" -4권 머리말 중에서

"대한민국史는 일제의 강점, 분단, 전쟁, 그리고 독재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망의 역사가 아닌 희망의 역사"라고 말하는 저자는 서울대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