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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의 산신은 영험하고 민초들의 생각을 거부하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만약 정성을 다한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금성산에는 전라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빌기 위해 모여들었다. 나주 인들의 높은 기상을 품고
있는 금성산은 나주의 자랑이요, 영산강의 핵심 포인트이다. 그래서 호남의 자랑이었던 것이다.
한때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모여들기 때문에 제사를 모시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혼잡했다. 남녀가 가리지 않고 혼잡해서 밤이 되면 산에서
그대로 잠을 자며 순서를 기다리곤 했다.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은 기어이 제사를 마치고 갈려고 했다. 이 때문에 남녀간의 간통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제사를 지내고자한
사람들끼리 서로 다투며 싸움도 일어났고 시끄러운 사건이 그칠 날이 없었다.
보다 못해 관아에서는 매일 밤 4명의 관원들을 시켜 밤새도록 사당을 지키고 질서를 잡아갔다. 한때는 중실사를 패쇠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던 곳이 중실사라 하겠다.
최부는 먼저 제단 위에 준비해간 음식을 정갈하게 차렸다. 그리고 7명 전원이 한 줄로 서서 제를 올렸던 것이다. 지금은 사당의 흔적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당시 번영을 누렸던 제단으로 썼던 상석사이로 무성한 잡초만 뒤덮고 있다.
이번에는 제주해신에게 당제를 드리지 않은 점을 물고 늘어졌다. 진무(鎭撫)로서 수정호의 총무 일을 맡아보는 안의는 명색이 관원인데도
당신(堂神)을 드렸어야 했다고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실제로 제주는 가는 곳마다 해신이 차지하고 있는 신(神)들의 천국이다.
바닷가 어느 곳이고 제단이 있고 처처에 당집이 자리했다. 섬에 살며 바다를 상대로 삶을 꾸려 가는 그들로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거친 바다였고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를 상대로 일을 해야 하는 그들로서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 해신인지 모른다.
제주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철저하게 믿어왔다. 일반 민간에서는 어디든 반반한 곳에는 신을 모실 사당을 설치하고 해마다
정월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신을 받들고 굿을 했다. 그 중에는 바다에 나가 일하는 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신을 모셨다.
연약한 인간의 단면이 드러난 샘이다. 역귀를 쫓아내고 징과 북을 치면서 집집마다 드나들면서 해신이 보살펴 주기를 바랐다.
주로 관선과 조선이 많이 드나들었던 별도포나 조천관에서는 뱃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술과 고기를 차리고 즐기며 해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주에서 출항하는 배들은 어디에서 배가 뜨건 포구 곁에는 반드시 신당이 있다. 조천관이나 별도포도 마찬가지다. 육지로 가는 사람들은
해신에게 빌면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나약한 인간의 절대자에 대한 복종이자 스스로의 구원인 샘이다.
제주나 광양, 차귀, 천외, 초춘 등등 배가 뜨는 곳에는 반드시 당집이 있고 해신에게 빌어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들은 최부가 배에 오르면서
해신을 업신여기고 공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화난 해신이 도와줄 턱이 없다. 결국 수정호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믿었다. 참으로 원망스럽다고 투덜댄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 있던
군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의의 말에 동조했다. 제주에서 해신은 살아있는 신이요, 날마다의 생활을 함께 하는 절대자였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해주듯 제주에는 세계최초의 도깨비 공원이 문을 열었다. 현대판 신들의 천국이 열린 것이다. 도깨비 야간 테마파크는 색다른 관광
상품의 명소로 호기심을 돋운다. 제주 인들의 가슴에 깊숙이 깔려있는 민속설화에 살아있는 해신이, 오늘날의 도깨비로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신에 대한 의지는 제주인들의 운명
도깨비는 우스꽝스럽지만 어릴 때 할머니의 팔베개 속에서 들어보았던 친근한 감정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동화적 개념이 즐겁게 해준다.
자연을 응용한 나무, 돌, 바다 등을 소재로 한 도깨비는 현대적 감각에 맞게 디자인해서 새롭게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바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모티브로 도깨비가 나타나서 해신에 못다 한 정성을 바치라고 하는 격이다.
한라산을 뒤로 넓은 자연 속에 더 큰 바다를 안고 있는 설화의 땅 제주에서는 해신이 바다의 주인이다. 바다를 관장하는 임자가 해신이라는데
최부는 누가 뭐라 하건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별도포를 떠날 때 해신당에 들르지 않았지만 지금의 표해는 해신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최부처럼 해신의 존재를 안정하지 않는 자로는 나이를 많이 먹은 권송이 있었다. 그는 5년 전에 일어났던 정의현감(縣監) 이섬의 이야기를
느리지만 감칠맛이 우러나게 천천히 말했다.
그는 정의 현감이 무사히 마치고 임기를 끝낸 다음 제주를 떠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배를 타기 전에 그는 사흘 간이나 목욕재계하고
해신사에 들러 제사를 드렸다. 지극 정성으로 마음을 닦은 후 배를 탔지만 표류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배를 탔던 50여명의 사람들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난파선 안에서 죽고 이섬과 함께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중국 땅
양주(楊州)에 표착해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말대로라면 그는 관원이었고 정성스레 신당을 찾았으니 당연히 무사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목숨을 잃게 했고
자기 자신도 겨우겨우 살아오지 않았는가? 권송은 마지막으로 확신에 찬 결론을 말했다.
“뱃길의 좋고 나쁘기는 그 날의 일기에 따른 바람이 어떠하며 얼마만한 순풍을 만나느냐가 문제이지 제사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최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세상의 만물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귀신이란 없는 것이므로 귀신에 의지하거나 또는 탓을 해도 안 된다.
운세와 복선(福善), 화음(禍淫)은 오직 공평한 것이라고 믿었다.
악인이 미신으로 복을 빈다고 해서 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선한 사람이 옳지 못한 방법으로 남의 눈을 속이거나 간사스런 방법으로
이익을 얻으려 해서도 안 된다.
제사를 지내드릴 때 길복이라며 법도에 맞지 않는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 천지의 귀신에게 음식을 올렸다고 복 받았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 하겠다. 더욱이 제사에는 질서와 룰이 있는 것인데 우리네 같은 선비나 서민들이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바른
예가 아니다.
다만 천자나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산천에 제사를 지내왔으며 나주 금성산에서는 철따라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나라님의 지시에 의해서
명산대천으로 지명되어 국가제사로 행했던 것이다.
이를 본뜬 일반인이 한 제사는 도리가 아니고 불경(不敬)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런 것이 잦아지면 오히려 일상이 어지러워지고 신을 모시기가
어렵게 된다.
예가 아닌 제사는 개인의 허망한 욕심을 쫒는 행위로 막아야할 음사(淫祠)인 것이다. 음사로는 복을 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음사로 복을
얻었다는 사람도 아직은 없다.
제주도는 육지와는 달리 주로 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서 생업을 이루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이나 사고를 당해 죽음에 이른 경우가 너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안전을 요구하게 되었고 전지전능한 절대자에 귀의하게 되었으며 많은 신을 믿고 가까이 해야만 했던 것이다.
- 다음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