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오. 무궁화 이 세계는 망하고 말았구려.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세상에 글 아는 사람되기 어렵구나. 鳥獸哀鳴海岳瀕. 槿化世界已沈倫.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이 상실되자 아편을 먹고 자결한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이 마지막으로 남긴 ‘절명시(絶命時)’ 네 수 중 하나다.

▲ 황현 지음 / 임형택 외 옮김

세종 때의 명 정승 황희의 후손으로 1888년 과거에 급제했으나 타락한 정치현실에 회의를 품고 구례로 귀향,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직필을 휘두르며 3천여 권의 서적을 열람하면서 역사비평과 시작에만 전념했던 황현.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절명시(絶命詩)’ 네 수와 함께 “…나라가 선비 기르기 오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 죽는 자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랴…”라는 유서를 가족에게 남기고 자결한 황현의 《매천야록(梅天野錄》.

이 책을 추천하게 된 배경은 본지 284호의 추천도서였던 강준만 교수의 ‘한국근대사 산책’ 군데군데에 정사(正史)도 아닌 야사(野史)인 ‘매천야록’을 상당부분 인용하고 있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구입해 보았는데 했는데 우리가 꼭 한번쯤은 읽어볼 책이라 사료되어 추천하게 됐다.

《매천야록》은 구한말 시기의 정치, 사회 등 제반 사정을 황현이 취재, 정리한 기록물이다. 기록시기도 1864년(고종 원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집정으로부터 1910년(순종 4년) 국권침탈에 이르기까지의 47년 간의 시대적 상황을 기술한 편년체의 역사책으로써 황현 자신이 모두 기록한 것이다. 다만 끝 부분의 1910년 8월29일부터 9월10일 그가 순절(殉節)할 때까지는 문인 고용주(高鏞柱)가 추기(追記)하였다고 한다.

《매천야록》이 기록한 1864년으로부터 1910년에 이르는 한반도의 반세기는 파란만장으로 복잡하고 급박한 시대였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적 전통이 해체되고 근대적 삶으로 전환하는 개혁개방의 시대였고 위기와 혼돈의 시대이기도 했는데 이 과정을 한국사회는 순조롭게 통과하지 못하고 마침내 국권을 상실이라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매천야록》은 바로 이 시대를 살면서 황현 자신이 보고들은 바를 기록한 역사의 증언서로서, 구한말의 혼돈 한복판을 걸어가며 재야 지식인의 눈으로 자기시대를 기록한 기록물이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흥선대원군의 집정과 김씨세도(金氏勢道)의 몰락,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오랜 반목, 민씨 세력의 부정부패, 외세의 침입과 민족의 항거, 동학군과 의병운동, 고종과 순종의 무능력, 지배층과 외세에 시달린 민중의 수난, 독립협회와 민권의식,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숨가쁘게 전개된다.

다시 말해 《매천야록》은 조선시대 말의 개화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 이후 한일 합방에 이르기까지의 변천하는 사회상 및 내정·외교의 중요한 사실을 거의 시대 순으로 빠짐없이 황현의 눈으로 기록하고 있다.

《매천야록》은 자신이 보고들은 바를 기록한 산문의 일종인 필기(筆記)의 전통을 계승한 기록으로써 성격으로 보면 야사(野史)를 의미하는 야승(野乘)에 속한다.
따라서 《매천야록》을 읽다보면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걸리기 쉬운 착오와 왜곡이 없지 않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정보의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에 의존하다보니 오류가 없을 수 없는데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이런 점들은 감안하고 고려해 읽어할 것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망국으로 치닫는 격동기에 한 인간이 사회를 비판하고 고뇌하였던 것을 사관(史官)이 사초(史草)를 기록하던 것보다 더 어려웠던 조건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책으로 남겼던 것은 우리 후손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