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정사(正史), 동양 역사학의 전범(典範)

이번 구정 연휴동안 중국 사서(史書)의 원형이랄 수 있는 「사기(史記)」, 그 중에서도 압권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상, 하권 합쳐 2천여 쪽에 달하는 많은 분량인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꺼번에 모두 다 읽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이유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아껴두며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이야기를 듣듯이 읽어가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사마천 (지은이) 김원중 (옮긴이)

《사기열전》은 〈사기〉 가운데서도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재구성한 <열전>편만을 따로 모아 놓은 책으로, 지금도 〈사기〉 하면 <열전>을 떠올릴 만큼 이 작품은 인류가 남긴 가장 뛰어난 문장 가운데 한 편으로 남아 있다.

세계인의 고전 『사기』는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의 저서로서, 전설의 황제(黃帝)시대로부터 전한의 무제(武帝)때까지 2000년을 아우르고 있는 통사다.

《사기열전》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온갖 인물 군상의 결정체이다.

예를 들면, 「자객열전刺客列傳」은 차라리 목을 내놓을지언정 지조는 꺾을 수 없는 총신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홀로 적지에 뛰어들기를 마다하니 않는 사나이들의 세계를 보여준다.「회음후 열전淮陰侯列傳」은 남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간 굴욕을 딛고 일어나 초왕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결국 유방에 의해 제거된 희대의 풍운아 한신(韓信)의 이야기다.

그밖에도 「조선열전朝鮮列傳」을 읽다보면 고대사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등 역사와 함께 부침 하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선비 김득신은 ‘사기’ 열전이 너무 좋아 무려 1억2만80번을 암송했다고 한다. 물론 극단적인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에서 가장 애독된 역사서가 ‘사기’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그 인기는 현재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은 2003년에 〈조선일보〉에서 선정한 ‘대학교수 추천 베스트 10선’에 올랐고, 2005년에는 〈교수신문〉의 연재기획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최고의 사기 번역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사기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사기열전》을 생명력 넘치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본위의 역사를 읽게 만든 작가의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인물들을 현재에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p24 해제 중에서

"관포지교(管鮑之交)"나 "토사구팽(兎死狗烹)"과 같은 고사성어로도 널리 알려진 이 역사서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며 동서양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사기열전》은 역사책도 재밌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책으로서 곁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어보기를 권한다.